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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Aug 25. 2022

소리없는 우울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9.


이것은 늘 소리 없이 찾아온다.      


생각이나 걱정이 뚜렷하게 문장으로 떠오르지 않고 온몸을 스멀스멀 근질거린다.

잠에서 깼는데도 침대를 벗어날 마음이 들지 않는다.

허기는 느껴지는데 식욕은 없다.     


아, 또 소리 없이 찾아왔다.     


기척을 느꼈는지 옆으로 다가온 큰고양이를 꽉 끌어안아 본다. 싫어하는 줄은 알지만 이럴 때만큼은 유튜브에 나오는 환상의 동물들처럼 내 기분을 알아차리고 위로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늘 그렇듯 잠시 뒤에 앙칼지게 바둥거리며 벗어난다. 뿌리쳐진 손이 괜스레 무겁다.     


왜 갑자기 이렇게 됐지. 곰곰이 지난 며칠을 되돌아본다. 마음먹었던 일이 잘되지 않았던 것, 사소하게 기분 나빴으나 그냥 묻고 지나간 일, 오랜만에 정리한 가계부가 참담했던 일 등, 사소한 불편함들이 누적된 결과인가보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두고만 볼 수 없으니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냉장고 앞에서 문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고 나서야 간신히 메뉴를 정했다.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별 용건도 아닌데 괜스레 내 반응이 날카로움을 느낀다. 말투를 가다듬고 조심스레 통화를 마친다.     


오늘은 침대 시트를 빨기로 한 날이다. 시트를 벗겨내고 세탁기를 돌린다. 침실로 돌아오니 유난히 뽀송뽀송해 보이는 매트리스가 눈에 들어온다. 몸을 뉘자 까슬한 감촉이 피부에 전해진다. 괜히 몸을 더 비비며 촉감을 만끽한다. 고양이들이 다가온다. 이번에는 억지로 끌어안지 않는다. 가만히 쓰다듬어 드린다.     


살짝 더운 침실의 온도, 손을 움직일 때마다 날리며 얼굴에 와닿는 고양이 털의 감촉, 허벅다리를 스치는 까슬한 매트리스 감촉, 커튼 틈으로 보이는 흐린 하늘, 멀리서 들리는 세탁기 소리. 일부러 티비를 틀고 청소기를 돌려도 소음마저 귓바퀴 언저리를 맴돌다 사라진다.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조용하게 우울하다.     


물론 달가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난 떨지도 않는다. 구태여 조용함을 고독이라 부르지 않고, 구태여 이 기분을 울적하다 말하지 않고, 조금 힘에 부침을 느끼면서도 조용함 속에서 오늘을 차근히 보낸다.      

    

※ 오늘의 잘한 일     


- 우울함을 잘 배웅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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