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8.
세상에는 돈으로 해결되는 것들이 많다. 물론 돈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최소한 지출을 늘림으로써 덜 성가셔질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없다면, 그럼에도 해결이 필요하다면, 별수 있나. 성가심을 감수하는 수밖에.
홀로살이 어느덧 십 년을 훌쩍 넘었고 풍족했던 시기보다는 가난에 아등바등하던 시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욕구나 필요를 포기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고, 가능한 최저비용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자잘한 경험이 많이 쌓였고 생존능력이 향상되었다. 그렇게 쌓인 경험이 무엇보다 유의미한 것은 첫째, 전혀 다른 종류의 새로운 영역에도 일단 도전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 둘째, 사안의 사이즈를 보고 스스로 해결해볼지 남에게 맡길지, 남에게 맡긴다면 비용은 얼마나 필요할지 빠르게 견적을 뽑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도전은 자동차 수리다. 현재 실질적이고 유일한 자산이라 할 수 있는 17만km 09년식 중고차. 이미 내 손에 왔을 때 10만km를 넘어있었던 친구이다. 구매 당시 자동차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다소 손이 갈 구석이 많은 녀석을 업어왔는데 덕분에 크고 작은 고생을 좀 했다. 이번 사안은 사이드미러 고장이다.
유튜브 등을 참고하여 원인을 분석하고 필요한 부품을 구매한다. 그나마도 국내에는 재고가 없어 받는데 2주나 걸렸다. 본격적으로 사이드미러를 분해하고 문제가 되는 부품 교체에 성공했다.
아, 안된다. 젠장. 망했다.
반나절 동안 낑낑거리며 매달려 봤는데, 안된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냥 문제가 되는 부품을 빼버렸다. 오 접힌다. 비록 자동이 수동이 되었지만 어쨌든 접힌다. 사이드미러의 본질적인 기능에 문제가 없으니 해결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어릴 적 즐겨보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패트와 매트’가 생각난다.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과정에서 일이 커지고 틀어지지만 끝내 만족할만한 모양새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에 만족하고 즐기는 순수한 친구들.
이 DIY 이야기의 가장 큰 교훈은 이거다.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는 것. 내 손으로 직접 하면 다소의 흠이나 못남마저도 마냥 좋지 않은가. 사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수리를 시작하기 전 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중간에 수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 글의 결말이 이렇게 뒤바뀔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래 정신승리다. 뭐 왜 정신승리가 어때서. 패트와 매트 귀엽잖아. 해맑잖아. 행복해 보이잖아. 나도 그렇게 보이고 싶을 뿐인걸. 늘 적당히 성취하고 적당히 만족하고 적당히 행복할 테다.
※ 오늘의 잘한 일
- 사이드미러를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