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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Aug 23. 2022

저녁 메뉴 변경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7.


한 주의 시작을 앞두고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일주일간의 식사메뉴 선정이다. 전 주의 메뉴, 냉장고의 재고 현황, 날씨, 기분, 일정, 애인님의 요구사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선정한다. 전업주부로서 무척이나 숭고하고도 설레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지만, 계획의 철저한 이행에 목매지는 않는다.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 시시각각 발생하는 변수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응한다.     


오늘 역시 무척이나 급박한 위기 상황의 발생으로 긴급히 계획이 변경되었다. 애인님의 신체에 대자연의 습격이 찾아온 것이다. 따라서 오늘 요청받은 메뉴는 떡볶이이다.    

 

이러한 긴급한 이슈에 능숙히 대응하는 것 또한 전업주부로서의 역량을 평가받을 기회. 다행히 순서만 조금 앞당겨졌을 뿐 사전에 예정된 메뉴였기에 준비에 문제는 없다.      


우리는 각자 다른 형태로 대구에 인연이 있고, 대구와 관련된 것 중 ‘납작만두’를 특히나 좋아한다. 종종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냉동실에 쟁여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챙겨 먹는다. 다만 이 납작만두의 특성상 해동에 많은 시간 필요한데, 얼마 전 이런 상황에 아주 유효한 주방도구를 하나 구매했다.     


바로 해동 트레이다. 열전도율이 높은 재질로 만들어져 냉동된 식품을 빠르게 해동시켜준다. 식품을 아예 익혀버리는 전자레인지의 해동 기능 대신에 사용하기 좋다. 이 얼마나 놀라운 기술의 진보인가.     


해동트레이와 납작만두


사실 주방을 살펴보면 이런 제품이 참 많다. 주부의 시간을 벌어주는 도구들. 맛을 우려낼 시간을 줄여주는 다시다, msg. 식칼과 절구 등 원시적인 도구들을 대체해주는 채칼, 초퍼, 믹서. 주방 가전의 끝판왕 식기세척기(갖고 싶다격렬하게 갖고 싶다)까지. 어디 주방뿐이겠는가. 수많은 살림 도구의 본질 중 하나는 가사노동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다.     


문뜩 궁금해졌다. 그렇게 확보된 시간은 주부들에게 무엇이 되었을까. 아마도 운동, 또는 드라마, 어쩌면 낮잠, 나에겐 글쓰기. 뭐가 되었든 그 시간이 다르게 쓰이기를 희망한다. 소소하면 어떠하리, 건설적이지 않으면 또 어떠하리.      


그러니까 우리, 때로는 멸치 똥 떼고 육수 우려서 건강하게 먹을 시간에 박사님들이 개발하신 멸치 다시다 쓰자. 무릎, 허리 관절 박살 나면서 무리하게 손 청소하지 말고 설설 핸디 청소기 돌리자. 문명의 이기를 빌려 한가해지자.          



※ 오늘의 잘한 일     


- 떡볶이 양념이 이게 아주 진짜 아 말로 설명을 못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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