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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Sep 18. 2022

애인님과 싸웠다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18. 애인님과 싸웠다.      



애인님과 싸웠다. 나는 왜 이리 짜증이 늘었느냐고 성을 냈고, 애인님은 같이 있는데 같이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서운해 하셨다.   


한 사람과 오랜 기간 연애를 하며 생긴 장점 중 하나는 싸움의 프로세스가 간결해진다는 것이다. 우선 상대의 문제를 파악하는 시간이 짧아진다. 거기에 수천 건에 달하는 갈등 상황 데이터베이스에서 유사 사례를 찾아 현 상황의 해결에 참고한다.   


확실히 최근 들어 우리는 대화가 적고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일이 잦았다. 애인님에 따르면 하루 중 내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맛있다’란다.   


흔히 갈등 상황에서 남성들이 하는 제일 잘못된 행동 중 하나가 반사적인 변명이다. 나의 경우 ‘항상 같이 있어서 특별히 공유할게 없었어’였다. 하지만 이는 본질로부터 한참 벗어나 있다.   


뻔하지만 원인은 나의 우울 및 에너지의 부족이다. 단조롭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즐거운 일을 발견하기 어렵고 그날그날의 우울을 견뎌내며 에너지는 소모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주부로서의 일상이 끝나면 퇴근길 지친 직장인의 마음이 되어버린다. 요즘 내 마음의 색깔은 뿌연 회색이다. 이런 무채색의 마음을 함께 사는 사람에게 내비치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긍정을 가장 할 에너지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싸움이 발발한 이상 화해를 위해서도 성의를 보여야만 했다. 단조로운 일상을 뒤져서 이야기 거리를 발굴해보았다. 말을 하는 자신도 재미가 없는 시시껄렁한 것들을 애인님은 무척 흥미롭게 듣고 반응하신다. 그 다채로운 반응이 내 무채색의 하루에 유채색을 칠해주기 시작했다.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시시콜콜한 대화가 되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소통이 되었다. 행복하지 않아서 웃을 수 없었고, 웃을 수 없으니 이야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반대였다. 이야기하니 웃을 수 있게 되었고, 웃으니 행복해졌다.   

선생님... 또 배웁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고 웃어서 행복한 겁니다!”   


바보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일상의 우울을 이겨내는데 유효하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 오늘의 생각   


- 함수상자가 생각났다. 애인님은 함수상자가 아닐까. 아무거나 막 넣어도 행복이 되어 나오는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상자.

도대체 무슨 방정식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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