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19. 불편한 마음과의 독대
명절이 끝나고 몸이 젖은 종이 마냥 무겁다. 사실 이유는 충분했다. 이번 추석은 유난히 힘들었다. 첫 이틀은 강원도 삼척에서, 이후 이틀은 서해 선재도에서,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일정이었다.
그 핑계로 며칠을 내리 쉬었다. 주부가 관심을 끊으니 집안은 서운한 티를 팍팍 내며 징징댄다. 바닥에 흩뿌려진 고양이 화장실 모래, 냉장고 안에서 명을 달리하는 식자재들, 슬슬 바구니 안에서 쿰쿰해지는 빨래들까지. 하나 다행인 건 요리를 하지 않으니 설거지도 쌓이지 않는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지경이 되기 전에 간신히 몸을 움직였다. 쌓인 살림거리들을 처리하고 집을 다시 사람 사는 꼴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몸에서 여전히 게으름의 냄새가 난다.
운동량이 부족해서인가 싶어 일부러 일을 만들어 본다. 미뤄두었던 부엌 찬장 정리와 이불 빨래를 후다닥 마쳤다. 그런데 이상하다. 몸이 여전히 찌뿌둥하다.
한참을 고민하며 지금 이 감정을 수식할만한 단어들을 찾아봤다. 우울함, 공허함, 허무감. 대체로 불편한 단어들만 떠오른다.
왜일까. 명절이 너무 행복했나? 일상의 궤도로 돌아오기 어려울 만큼? 아니면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앞에서 자신이 너무 초라했나?
아직은 이 공허함의 이유도, 털어낼 방법도 잘 모르겠다. 마침 TV에서 유명 정신과 의사가 우울증에는 명확한 이유가 없다고 하는 말이 괜히 귀를 맴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창밖을 보니 날씨가 좋다. 태풍이 지나가고 진짜 가을 날씨가 되었다. 그 핑계로 애인님께 윤허를 구하고 홀로 캠핑 일정을 잡았다.
내일은 좀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지금 이 감정과 진지한 독대를 하고 와야겠다.
※ 오늘의 잘한 일
- 캠핑 짐을 미리 싸서 차에 실었다. 일어나서 출발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