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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일 May 19. 2024

예쁘고 잘생긴 사람 사이에 낀 두부 한 모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한 달이 넘은 시기, 인원이 늘었다. 셋. 모두 여자였는데 전부터 선생님에게 1:1로 수업을 받았다고 했다. 서너 달 정도 차이가 났는데도 그들은 몰입을 잘했고, 자연스럽게 연기를 잘했다. 아직 어색함에 어쩔 줄 몰라하던 나는 살짝 기가 죽었고, 무엇보다 더 놀라웠던 점은. 세 여자들이 모두 전형적으로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외모를 가졌다. 이때 나는 계속 다닐지 그만둘지 가장 심하게 고민했다. 취미반이라고 들었는데요, 오디션을 준비하는 분도 계시고요, 제가 너무 오징어 같이 느껴지걸랑요.


성인취미반의 특성상 수강 인원이 자주 바뀌었다. 덕질로 다져진 미적 취향과 약간의 외모 콤플렉스가 발동된 나는 그들을 관찰했다. 외모를 보는 기준이 꽤 까다로운 편인데 이건 단언할 수 있다. 들어왔다 나가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99% 외적으로 훌륭했다. 선생님은 요즘 배우들은 전과 다르게 잘생기고 예쁜 게 다가 아닌, 다양성의 시대라고 늘 강조했지만. 그 공간에서 쌍꺼풀이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짝을 지어 연기 연습을 하고, 코칭을 받은 후, 최종적으로 촬영에 들어갔다. 핸드폰 후면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은 후 다 함께 모니터링을 하는 시간을 갖곤 했다. 제삼자의 시선에서 자신의 연기를 더 객관화할 수 있다. 주로 상체 위주로 나오기 때문에 무브가 너무 많을 필요가 없음. 발음은 잘 들리는지. 표정이 너무 과하거나 소극적인가. 상대의 대사를 잘 듣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 전 내 눈에 들어오는 건 내 얼굴의 단점이었다. 웃을 때 왼쪽 입꼬리가 내려가는 비대칭, 굽은 어깨와 거북목, 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잡히는 턱살. 특히나 이목구비가 선명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나는... 그거다, 두부. 숟가락으로 쿡쿡 찔러 만든 것 같은 눈코입.


수업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마침 h 언니도 같은 방향이었다. 새로 함께 하게 된 h 언니는 오고 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연기를 잘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녀는 고등학교 연극부 출신으로 대학로 극단에 오른 경험이 있었고, 현재 본업으로 연기를 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전형적으로 배우 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모니터링을 한 날이면 우리는 서로 큰 모니터로 자신의 얼굴을 보면 너무 민망하지 않냐고, 너무 못생겨 보인다는 얘기를 나누곤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그런 h 언니가 기만자 같았다. 그녀는 정말 예뻤기 때문에... 그리고 연기력도 짱이었다...


종종 학원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곤 했다. 그때 h 언니에게 들었던 말이 좀 놀라웠다. h 언니는 전에 다른 일을 하다가 어렸을 때부터 해보고 싶었던 연기를 다시금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는데, 배우가 되겠다고 주변에다 말을 하자 지인들은 하나 같이 비슷한 반응이었다고. 너가? 너 같이 평범한 애가?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h 언니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때 느꼈다. 그녀가 이 길에 오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을.


나와 h 언니는 현재 덕질을 하고 있단 공통점으로 더욱 가까워졌다. 흥미로운 건 완전히 상반된 취향을 갖고 있던 것이다. 나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스타일을 좋아했고, 가장 취향에 가까운 얼굴을 아이돌 중에 고르면 SF9 휘영이다. (이상형 아니라 심미적 취향입니다) 반면 h 언니는 순하고 착하게 생긴 얼굴을 좋아한다고 했다. NCT 지성과 도영이라고 했나...(NCT 멤버들 잘 몰라서 기억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학원에서는 가끔씩 각자의 첫인상에 대해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소화할 수 있도록 연기 실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카메라에 비치는 직업이므로. 내가 타고난 얼굴과 이미지를 활용하여 어울리는 배역을 고르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평소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어떤지, 크게 신경 써본 적은 없었다. 각자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느낀 부분을 공유했다. 생각보다 첫인상은 평소 성격과 취향도 많이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모두가 캐릭터가 달랐다. 단순히 예쁘고 못생겼고 그런 차원을 떠나서.


모두가 동일한 대본의 독백 연기를 한 적이 있다. 드라마 <몸값>에서 장기 경매를 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원작을 본 적 없었다. 선생님도 굳이 모르는 작품의 대본이더라도 찾아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초보자의 경우 그 배우의 연기를 따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일주일 전 받은 대본으로 각자 준비한 후 발표를 했다. w는 건들거리는 양아치처럼. p는 차갑고 건조하게. s는 권태로운 직장인처럼. 나는 밝고 명랑하게.


내가 오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초반에 고민했던 것에 비해 나는 학원을 10개월이나 다녔고, 고참에 속하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직접 연기를 하는 것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연기를 보는 것이 즐거웠다. 함부로 속단할 수 없어도 사람들이 연기하는 낯선 배역에는 각자 걸어온 삶이 배어 있었다. 겉모습, 첫인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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