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
작가가 되기 위해서 꼭 등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전년도 신춘문예 합격작을 출력했다. 쓰기 위해서는 읽어야 한다. 나는 익히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아니 누구라도 아는 방법이다.
무인 프린트 카페에서 획득한 152장의 A4 용지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책상 한쪽에 비치한 후 나는 이제 진짜 내가 해야 할 일에 착수한다. 그래야만 할 것이다.
제자리에서 몸을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의자가 한 바퀴 돈다. 두 바퀴, 세 바퀴, 무한히 돌 수 있을 것 같다. 책상의 맞은편. 나의 침대 위에는 그녀가 누워있다.
아. 자살 시도라도 해볼걸.
이대로 끝인 건가. 죽음을 눈앞에 두자 나는 그동안 내가 죽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행하는. 그러나 막상 시도했다고 한들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손에 비하면 나의 손은. 너무 작고 부드럽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그 손은 대단했다. 주저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이었다. 나는 저항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때 그녀가 기절했다.
몸은 서 있던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이것은 내가 그녀를 치워버릴 유일한 기회일지도 몰랐다. 그저 문밖으로 치워버리면 됐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한동안 그녀를 감상했다. 내가 만든 멍. 푸르게 짙은. 멍. 그 위에 피어난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마치 금방이라도 모니터에서 튀어나온 듯했다.
그녀는 사흘 내리 잤고, 깨어난 후에도 내내 누워있었다. 바로 저렇게 죽은 듯이. 움직임은 아주 가끔, 배변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에 가는 것 정도였다.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날은 나의 취기가 만들어낸 환상이 아닐까? 유일하게 그 시간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피멍이다. 점점 검게 번지고 있었다. 누운 멍 위에 연고를 발랐다. 손가락이 닿자 목 근육이 응축했다.
배고프지 않아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내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써야 할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쓰고 싶어서 쓰지 않아서 흘러내릴 것 같은데. 쓰려고만 하면 쓸 수 없었다.
회사에서 강제로 들여놓은 퇴직 연금이 있었다. 수령액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으로 h 아카데미에서 열린 소설 클래스를 신청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작가. 강의 합평 수업이었다. 강, 강의 문장은 뭔가 달랐다. 나는 그의 문장을 읽고, 읽고, 또 읽고. 따라 쓰고, 썼다. 열아홉의 나는 강처럼 쓰고 싶었다. 내가 알기로 강만큼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은 없었다.
배가 고프다. 하루 한 번은 밥 먹기. 내가 유일하게 지키고 있는 규칙이었다. 버터와 명란을 넣은 알리오올리오를 만들었다. 마무리로 치즈와 노른자를 올렸다. 흰자는 버렸다.
배고프지 않아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강의 책 위에 프라이팬을 그대로 올렸다. 오늘도 면의 양을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다. 너무 많았다. 낮이었지만 캔맥주를 땄다. 영화를 배경 삼아 식사를 시작했다. 수십 번은 본 마블 영화를 틀었다. 짐 자무시, 라스 폰 트리에,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를 보려 꽤 애를 쓴 적도 있었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먹으면서 보기 적합한 것 같진 않다. 나는 그 영화들이 뭘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해 보고자 머리를 굴렸지만. 그뿐이었다. 짜고 눅진한 면을 씹는다. 익숙한 맛이다. 저 당시 크리스 에반스의 외모는 봐줄 만해… 지금은 모르겠지만… 많이 웃었다. 맥주를 한 캔만 더 먹음 좋을 것 같았다. 냉장고를 열었다. 맥주가 없었다. 원룸촌의 몇 안 되는 장점은 편의점이 아주 많다는 거였다. 3분 거리의 편의점에 갔다. 할인 금액에 맞춰서 맥주 여덟 캔을 구매했다. 방에 돌아왔을 때 프라이팬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녀가 나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손과 입이 기름으로 번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