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없이 기다려주는게 좋아"
공기 속에 맑은 가을이 묻어나던 날
오랜만에 찾은 어린이집 놀이터에는
반 친구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아이는 바로 가지 않고 멀찌감치 서성였다.
"친구들 저기 있네, 가서 놀까?”
아이는 홀로 철봉에 매달리며 놀다가,
미끄럼틀을 탔다. 한 친구가 손을 내밀자,
활짝 웃으며 한참을 뛰어놀았다.
그리고 오랜 단짝친구들을 찾아 남은 시간
신나게 뛰놀며 멈추지 않는 웃음과 땀을 흘렸다.
함께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눈 밤 나는 물었다.
"아깐 반 친구들에게 왜 바로가지 않았어?”
아이의 대답은 담담했다.
“친구들이 많아서 누구랑 놀지 몰랐거든."
“그런 마음이 들 땐 반갑게 인사만 건네도 충분한데, 엄마가 손잡고 가서 도와줄까?"
"나는 엄마가 말 안 하고 기다려주는 게 좋아"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엄마, 나는 모기 잡는 탐험 놀이랑 방귀똥 놀이한 게 신났는데 , 엄마는 오늘 어떤 게 즐거웠어?"
아이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다시 반짝였다.
처음 듣는 말. 엄마가 어떤 게 즐거웠는지 아이가 물어본 적 있던가. 아니면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걸까. 그 물음이 내 마음에 신기하게 스며들었다.
"엄마는, 놀이터 개울가에서 네가 아주 큰
방아깨비를 손에 쥐던 게 생각나, 덕분에
방아깨비의 오묘한 눈빛을 처음 봤네!"
"맞아, 눈이 이렇게 가늘고 외계인 같지!"
아이는 제 눈매를 손가락으로 가늘게 좁히며
깔깔 웃었다.
만 네 살인 아이는 유아기와 어린이의
경계에 서있는 듯하다.
스스로 하겠다는 선택을 이어가면서도,
엄마가 무엇을 즐거워했는지 궁금해했다.
햇살이 비친 공원에서, 아이와 손 잡고 서있던 우리의 그림자가 떠올랐다. 길게 늘여 드리워진 그림자 속 서로의 발걸음은 나란히 닿아있었다.
기다려주는 게 좋아.
나는 아이만의 속도를 존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