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오지랖의 경계선
흔히들 이야기하는 오지랖*의 기준은 뭘까
*오지랖이란 사전적으로는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의미하며, 흔히 남의 일에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오지랖이 넓다'라고 표현한다.
나는 사실 오지랖이란 주제에 대해 그다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다지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참견하기도 싫어하고 또 적극적으로 남의 일에 나서는 성격도 아니다.
(사실 이런 것도 지나치면 이기적으로 보일 수는 있다.)
또한 답정너이기 때문에 상대가 뭐라 하든 내가 이미 정한 것은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는 스타일이다.
(이야기할수록 자신의 욕을 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맺고 사람을 사귀다 보면
필연적으로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을 몇 가지 떠올려보면
우선 대단히 친화력이 높고,
또 초면인 사람에게도 쉽게 다가가고
그리고 대다수가 기본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쉽게 친해지기도 하고 항상 밝은 성격들이 많아서 대부분은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난 다음에 발생하곤 한다.
조금씩, 그리고 이따금씩 배려와 오지랖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다.
그 경계선이란 것은 참으로 미묘해서
사람마다 때로는 배려로, 때로는 오지랖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자식을 배려하여 내뱉는 진심어린 조언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는 마냥 잔소리로 들리듯이 말이다.
배려와 오지랖의 차이나 기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기에
결론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이다.
나의 말과 행동이 과연 상대방에게 있어서 '배려'인지 '오지랖'인지,
그것을 따지는 것이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나의 '배려'를 상대방이 '간섭'이나 '오지랖'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어떻게 전달하느냐이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이 왜 오지랖이 넓다고 하냐면
너무나 스스럼없이 쉽게 그런 말을 내뱉곤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간섭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약간 별개의 이야기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또 그렇다고 오지랖에 딱히 악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는 상대에게 화를 낼 수도 없고. 정색할 수도 없다.
여기서 화를 내면 나만 속 좁은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는 느낌까지 든다.
인간관계에서 뭐든 한 가지가 지나치면 서로 힘들어지는 법이다.
평소에는 그냥 웃으면서 넘기다가도 쌓이고 쌓이면 상대방은 결국 불편한 사람으로 기억 남게 된다.
나의 배려가 때로는 상대방에게 강요나 간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호의라고 해서 누구나에게 호의로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그렇기에 배려와 호의에 있어서도 때로는 약간의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