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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고래 Feb 27. 2024

못다쓴 이야기

종대형

흠뻑 젖은 채 반도(고기잡는 그물)를 잡고 전쟁터에 나선 장군(將軍)처럼 버티고 서면 아이들 소리가 흙탕물과 함께 달려온다. 그물 안에는 미꾸라지랑 소금쟁이 그리고 돌멩이 몇 개가 들어있었다. 고무신에 물을 담아 어쩌다 잡힌 새끼붕어를 넣어 놓으면 세상 부러운 것이 없었다.

     

팔을 넣는 구멍이 허리까지 늘어난 누런 메리야스와 빤스를 바위 위에 오징어처럼 말려놓고 알몸뚱이만 물에 뛰어들면 한바탕 웃음소리가 물방울과 함께 하얀 팝콘처럼 파란 하늘로 튀어 올랐다.

     

요란한 매미소리가 흑백사진 속 배경처럼 대지를 가득 채우고 냇가엔 비릿한 물내음, 풀내음 그리고 여름내음이 사우나의 습기처럼 그렇게 올라왔다. 

    

작은ᆢ 아주 작은 키에 왼팔은 어릴 때 어떻게 다쳤는지 뒤에서 보면 항상 안쪽으로 조금 굽어있었다. 조막만 한 얼굴에 앙다문 입술 날카로운 눈 그리고 성깔 있는 노인에게 간혹 볼 수 있는 끝이 솟은 눈썹은 그의 고집스러움을 대변한다. 쇳가루를 먹은듯한 허스키한 목소리는 작게 얘기하면 상대가 듣기엔 또박또박함이 부족하여 정확한 전달을 하려면 항상 큰 소리로 얘기해야 한다. 그래서 남들은 그가 항상 화를 품고 있는 듯 착각을 한다.

     

흰색 바탕의 시계 줄은 검은색 시계 줄은 며칠 전 낡았다고 말한 것이 애가 쓰였는지 어느새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각의 흰색 피아제는 여름용, 따뜻한 황금색 동그란 시계는 겨울용. 그는 항상 시간과 계획 속에 살아간다.

      

매년 11월 1일 내복을 꺼내 입고 아무리 따뜻한 날이라도 4월 말 전에는 벗지 않는다. 매일 6시에 기상하여 출근한다. 회사 사무실 문을 열면 벽에 붙은 사훈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이 사훈은 그의 성격이 얼마나 급하고 정확한가를 잘 알려준다. 출근 후 그는 하루의 일과를 짜고 한 치의 오차 없이 실행하고 퇴근 후 9시면 취침 준비를 하고 10시면 잔다. 그는 그렇게 시계 바늘처럼 일생을 산다.

       

2019년 5월 21일 연락이 왔다. 전화기 넘어 큰 목소리 화가 난 건지 농을 하는 건지 아무튼 화가 난 건 맞다 "형 요즘 힘든데 너들은 연락도 한 번 안하노 씨부럴놈들 독거노인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확인 전화는 한 번씩하고 살지?” 여기서 씨부럴놈들은 좋아하는 후배를 전부 칭하는 말이다. 웃으며 알았다고 빨간색 종료 버튼을 눌렀지만 미안한 진심은 전하질 못했다.

    

독거노인 ᆢ 그의 나이 54세 92세 치매의 노모를 모시고 홀로 사는 그를 우린 독거노인이라 불렀다. 5월 24일 문자가 왔다 “형이 많이 힘들다. 옛날 병이 재발한 것 같다 연락 좀 해라.” 다급함과 초조함이 문자 속에 묻어났다.

     

우울증 3년 전 그는 우울증으로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렇다 형은 강박증이 있었다. 조금의 어긋남도 용서치 않는 그런 희귀병 남들은 별나다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느끼질 못했다. 항상 다니는 길로만 다닌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하지만 조금 다른 길로 가도 괜찮다고 고갤 끄떡인다.

      

하지만 형은 그렇지 않다. 혹여 다른 길로 들어서면 불안장애가 생긴다. 조금의 어긋남 약간의 다름을 인정치 않는다. 누군가는 그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맨 처음 일을 가르쳐 준 사람을 닮아서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조금 별나지만 아니 몹시 독특하지만 밥값을 내려고 하면 “ 형보다 많이 벌 때 네가 계산 해”라는 말을 하는 그가 나는 하나도 안 밉다.      

“나이 40이 넘으면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해”      

늘 생각한다. 그리고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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