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2018) 여름#2
H의 이자카야 입구에는 나무로 된 적당한 크기의 입간판이 있다.
나무 판에 입체적인 나무 글자를 새긴 입간판이다.
H의 개업을 축하하며 내가 선물한 것이다.
꽤나 고심하며 신중하게 골랐던 기억이 있다.
아마,입간판이라는 작은 선물에 온갖 축하의 마음을 담은 진심을 전하고 싶어서.
그녀는 입간판에 대해 이야기한다.
"입간판이 감성적이다. 오늘 왠지 엄청난 일이 생길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네."
입간판 하나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그녀는 감수성이 풍부하다.
"안녕하세요."
나와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H는 역시나 하얀 셔츠에 갈 색 앞치마를 두르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처음 뵙겠습니다."
우리는 H와 가장 가깝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바 자리에 앉는다.
"테이블 자리 빼 뒀는데.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 나누지."
H의 말에 그녀가 대답한다.
"방해가 안된다면 같이 이야기 나누어요."
H는 흔쾌히 그러자며 고개를 끄떡였지만 그의 얼굴에 묘한 불편이 드러났다.
H와 그녀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아니, 사실은 묘하게 가 아니다.
상당히 닮아있었다.
동류-, 같은 결의 사람-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서로 그 사실을 직감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불행인지 아니면 다행인지, 매장이 꽤 바쁜 탓에 우리 셋은 이렇다 할만한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웠다.
역시 맥주 생각이 절로 나는 초여름의 밤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때, 한 남자가 홀로 H의 매장으로 들어온다.
잠시 가게를 훑더니 그녀의 옆, 한 칸이 떨어진 바 자리에 앉는다.
그녀의 시선이 그 남자에게 고정된다.
무엇인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남자는 일본 생맥주 한 잔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꼬치류를 시켰다.
얼핏 봐도 근처 회사원인 듯하다.
살짝 흐트러져 있는 여름용 정장은 그의 삶이 퍽이나 고단함을 알려주듯 무거워 보였다.
넥타이는 메지 않았다.
그녀는 웬일로 하던 말을 멈추고 그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 쯤 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그녀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아는 사람이야?"
"아니. 첫눈에 반했어."
그녀의 대답에 숨을 헉하고 들이키며 무채색의 그 남자를 떠올린다.
나의 연인을 앞에 두고서.
그녀는 남자의 갑작스러운 등장 이후 내게 집중하지 못한다.
H 역시 묘한 기류를 느꼈는지 슬쩍슬쩍 우리와 남자를 곁눈질한다.
그 남자는 큰 키에 다부진 얼굴을 가졌다.
선이 뚜렷한 남자다운 느낌이 강했으며, 피부가 흰 편은 아니다.
그녀는 저런 스타일의 남자에게 끌리는구나-. 나랑 취향이 반대잖아. 다행이다-라는 의미 없는 생각을 한다.
그녀가 다시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번호 물어봐야겠어."
그녀는 불도저 같다. 거침없이 마음먹은 행위를 해 버리고 만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그쪽이 들어오실 때 첫눈에 반했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연락처를 여쭤봐도 될까요?"
생각보다 진부한 멘트지만 진심을 전하기에 더할나위 없다.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한순간 집중 되니 괜히 내 얼굴의 온도가 확 올라버렸다.
H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장면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그 남자는 그녀가 아닌 나를 보며 대답했다.
"같이 오신 일행 분께 실례가 안 된다면,따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인다.
암, 되고 말고.
그런데,저 남자 역시 상당히 저돌적이다.
보통의 평범한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난 그녀를 사랑이 시작되는 첫 페이지에 양보하기로 하며, H를 기다린다.
마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었다.
잠깐이었지만 가게 안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일시 정지 화면이 된 듯했다.
매장이 조금 한산해지자 H가 내게 말한다.
"이런 말 하기 뭐 한데, 그 친구분 말이야."
H는 혀 끝에 머무르는 말을 뱉지 않고 잠깐 그 사이에 정적을 둔다.
왠지, 그가 하려는 말을 알 것 같다.
"안 만났으면 좋겠어."
역시.
"왜? 아무리 너라도, 내 인간관계에 그런 식으로 간섭하는 건 별로네. 그 사람에 대해 뭘 안다고?"
말이 내 생각보다 거칠게 나온다.
"너랑 어울리는 사람이 아냐."
H의 이중적인 사랑이, 처음으로 날 통제하려 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