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가 없는 터널에 갇혀 헤매었다.
빈껍데기만을 남긴 채 하루하루 살아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출구를 상상하며
그 언저리에 작은 빛을 두었다.
정말, 작은 빛 한줄기였다.
언제 다시 어둠에 삼켜질지 모르는 미약한 빛.
출구 밖 유토피아에 간절히 닿길 바랐다.
그러나, 나의 유토피아는 다시 쥘 수 없는 과거에만 있었다. 언제나.
나의 유토피아가 과거에 있음을 여실히 느끼던 날, 좌절했다.
너무나 많은 것이 그리웠다.
너무 빨리 긴 여행을 떠난 나의 아버지,
그 보다 더 빨리 하늘의 부름을 받은 나의 친구,
찬란한 오색 같던 나의 영광의 순간,
그 모든 것이 현실에 존재하던 그 날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출구 언저리에 남겨둔 작은 한줄기 빛은,
내가 다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그 빛은,
당신이었다.
당신만이 나의 오늘이자, 내일이다.
당신의 존재에 나의 오늘이 생긴다.
그것은 결코 미약한 빛이 아니었다.
나는 당신 덕분에 이제 출구를 향해 나아간다.
지난날의 유토피아를 간직한 채 유토피아가 실재하지 않는 오늘을 살 것이다.
당신은 내 인생 가장 찬란한 유토피아이자,
실재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