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때문에 살아요"

by 라애파파

"아이 때문에 살아요"

정말 그럴까?


한때 죽고 못 살았던 우리의 사랑이

이 문장 끝에 서 있는, 그렇게 가벼워진 '사랑'이라는 단어였을까?


나는 이 문장에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되면서

필사적으로 변명거리를 찾아야 했다.


내 사랑이, 우리 사랑이

“아이 때문에 살아요”라는 말에서 끝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사랑이란 형태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봤다.


결혼은 매우 이타적인 행위다.

어찌 보면, 사랑이란 건

한 개인이 발현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이타적 행위인지도 모른다.


결혼의 초창기는, 양해각서와도 같다.

아직 ‘사랑’이란 형태로 구체화되기 전, 일종의 협의에 불과하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면

정식 계약이 체결된다.


한 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이타심의 총량이 늘어난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부양’과 ‘양육’의 의무를 갖는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한 사람에서 가족이라는 구조로 확장되는 것이다.


사랑이 ‘가정’이라는 형태로 발현되었을 때

그건 종교적인 무언가에 가까워진다.


가족 구성원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서로 영감을 주며,

살아가는 이유를 서로 읊조리며 의지하고 살아간다.


사랑의 목적은 그렇게 구체화된다.


각자의 몫을 다하며

세상이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편이 되어줘야 한다.


이 얼마나 이타적인 행위인가


그래서 ‘가족’이라는 구조로 발현된 사랑은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가족은 신성불가침이다.


타인끼리 만나 사랑을 시작하고

헤어지기 싫어 양해각서를 쓰고

정식 계약을 체결해 ‘가족’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먼 옛날 인류도 별반 다를게 없다

결국 우린 다 남이였다

지독하게 이타적인 인류다


매일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하는 풍경은,

사랑이라는 무형의 감정이 만개해 꽃을 피운 모양일 것이다.


그 모습을 떠올리니,

그 과정을 알고 나니,

사랑이 기적 같다는 말이 이해된다.


그래서 말인데,

“아이 때문에 산다”는 말은

이 모든 걸 다 담기에는 그릇이 너무 작다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2025.11.28)


애 때문에 살아요 -브런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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