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누군가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서도 쓰이지 않았다.
나는 그저, 말하지 못한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그 감정을 말로 남기고 싶었다.
감정을 표현하면 예민하다고 했고,
설명하면 너무 깊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감정을 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상처받는 쪽이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감정을 표현했다.
그는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다가갔고, 그는 물러났다.
사랑이 끝나기 전,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감정을 말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게 된 관계의 공기와 구조가 있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쪽만이 늘 감당했고,
감정을 회피하는 쪽은 해석 없이 떠났다.
이 글은 그런 감정의 비대칭 구조를 마주하기 위한 기록이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되던 침묵과 회피,
그 안에서 나는 무엇을 표현하고,
무엇을 감내해왔는가.
이 글은 누군가를 탓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끝낸 사람의 푸념도 아니다.
감정을 회피하는 관계를 통과하며,
감정을 감당하느라 침묵해온 나 자신을
다시 말하기 위한 기록이다.
나는 감정을 해석당하지 않기 위해 썼다.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싶어서,
용서보다 해석을 택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내 감정을 어떻게 말하며 살아왔던가.
왜 언제나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했는가.
이 글은 위로하지 않는다.
공감을 유도 하지도 않는다.
단지, 당신에게 조용히 묻는다.
“이 장면 앞에서, 당신은 당신의 감정을 어떻게 말하며 살아왔는가.”
이 책 ≪그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는, 감정을 말했지만 끝내 닿지 않았던 한 사람이 침묵의 구조를 해석하며 자신을 회복해가는 여정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사랑 앞에서 감정을 숨기고, 갈등을 피하며, 말 대신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는 끝내 어떤 설명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 침묵은 상처였고, 동시에 질문이었습니다. 말은 했지만, 관계는 끝났고. 감정은 남았지만, 닿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왜 그 고요를 견디려 했는가. 왜 끝까지 말을 기다렸는가. 이 글은 감정이 오가지 않는 관계 속에서, 말하는 사람만이 감정을 감당하게 되는 비대칭의 구조를 마주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무응답 끝에서 나를 다시 말하게 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침묵에 무너졌지만, 그 침묵 덕분에 나는 내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별 이후에야 비로소 보인 진실, 감정의 잔해 위에서 나를 회복하는 일. 이 책은 감정을 회피하는 관계를 지나, 감정을 끝내 해석해내고자 했던 사람의 기록입니다.
이 에세이는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감정의 해석 순서로 설계되었습니다.
각 장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읽어갈 때 감정의 흐름과 서사의 깊이도 함께 선명해집니다.
이 여정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 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