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숨은 마음과, 감정으로 닿으려던 마음
그는 내 음악을 끝까지 들은 적이 없다.
감정을 나누고 싶었던 나와,
감정을 통제하려던 그.
우리는 결국,
같은 노래를 끝내 들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음악은 그 자신이었고,
나의 음악은 몇 소절도 채 듣지 못한 채 꺼졌다.
“이건 뭐야, 진짜 이런 거 들어?”
“내 노래로 바꿀게.”
처음엔 장난처럼 웃던 말이,
나중엔 설명조차 피하게 만들었다.
감정을 나누려 할수록 말은 무력해졌고,
나는 점점 음악을 고르지 않게 되었다.
집에 있거나 함께 이동할 때면,
그는 늘 먼저 음악을 틀었다.
그의 음악은 기분을 따라 흘렀다.
기쁨은 빠르게, 우울은 깊게.
가사는 배경일 뿐, 감정이 먼저였다.
나는 조용히,
가사를 따라 흐르는 노래를 좋아했다.
특정 문장에 마음이 걸려야,
그 곡이 내 안에 들어왔다.
한 번은 그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보려 했다.
“이 노래는 왜 좋아?” 물었더니,
그는 “그냥 좋아.”라고만 말했다.
나는 이 가사에 마음이 닿았고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그는 그런 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그가 소개해준 노래 중에도 마음에 남은 곡은 있다.
가끔 듣는 몇 곡이 있고,
그가 음악을 틀다 내가 “이 노래 가사 좋다”고 하면,
그는 정말 기뻐했다.
“이거 말고도 비슷한 거 있어. 들어볼래?”
그렇게 말하며 눈을 반짝이던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는 내 감정이 담긴 말에는 좀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설명하려 들면 금세 대화를 흘려버렸고,
진심을 꺼내면 대답은 늘 흐릿했다.
감정이 닿을 것 같으면 그는 피하거나 모른 척 지나쳤다.
대화는 늘 감정이 닿기 직전에서 멈췄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말보다 음악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음악 앞에서는 솔직했고,
그것이 그의 피난처이자 방어였다.
스스로 다룰 수 있는 방식으로만 감정을 표현했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그는 옷에도 확고한 취향이 있었다.
데이트나 여행 중에도 옷 쇼핑은 일정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혼자 쉬는 시간에도 쇼핑앱을 켜곤 했다.
그 시간의 그는 활기찼고, 진심이었다.
나에게 옷을 선물할 때도 그랬다.
그의 감각으로 고른, 크고 헐렁한 티셔츠나 후드.
편하긴 했지만 중요한 자리에 입기엔 망설여졌다.
내가 다른 스타일을 원한다고 말하면, 그는 말했다.
“그건 별로야. 이게 훨씬 나아.”
“편하게 입고 싶은 날, 옷 없잖아.”
그렇게 웃으며 건넨 티셔츠엔
분명 그의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그의 취향은 내게 자연스럽게 덧씌워졌고,
그 옷들은 집 앞에 나갈 때나, 편히 쉬고 싶을 때 자주 입었다.
잘 입긴 했다.
다정함도 있었고, 정성도 느껴졌다.
다만, 그 안에 '내가 고를 수 있는 여지'는 좀처럼 없었다.
반대로 내가 그의 옷을 고르면 그는 말했다.
“아직도 내 스타일 몰라?”
“조금만 더 신경 써봐.”
나는 그를 이해하고 싶었고,
나의 취향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선택은 대체로 무시되었고,
그의 기준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기념일 선물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내가 이건 별로라고 분명히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다음에도 똑같은 물건을 들고 와선 물었다.
“이건 어때?”
그 순간, 피로보다 먼저 알게 됐다.
그건 무심함이 아니라, 나를 기억하지 않는 방식의 단절이었다.
이 사람은 내 감정을 기억하지 않았다.
내가 싫다고 말했던 감정조차.
그게 단순한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그는 내가 누구인지보다는,
자기가 나에게 무엇을 줬는지만 중요했던 사람이다.
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지침을 삼켰다.
사랑이라 믿었던 그 모든 피로는,
돌이켜보면 결국 나만의 해석이었다.
그러다 문득,
같은 말을 또 다시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에게 나는,
무엇을 말하든 결국 비슷한 말을 되풀이하게 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되풀이가 사랑을 지치게 만든다는 걸,
그는 끝내 알지 못했다.
그는 기억하지 않았고,
나는 더 이상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더 명확하게 표현하려 했다.
이건 별로라고, 나는 이 스타일이 아니라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은 따로 있고,
내 감정에도 모양과 색이 있다고.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단호하게.
다양한 어휘로 감정을 설명하려 애썼다.
그런데도 그는, 같은 걸 또 가져왔다.
그건 고집이었고, 무관심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말이 닿지 않는 관계에선, 말이 무의미하다는 걸.
그래서 점점, 입을 닫게 되었다.
물론 선물은 고마웠지만,
그 고마움 속에서도 나는 늘 어딘가 배제된 채로 있었다.
그는 내가 원하는 것을 궁금해하지 않았고,
내 말은 그의 세계에 닿지 않았다.
나는 그 안에서 끊임없이 설명했지만,
결국 혼잣말에 가까웠다.
그 안에 내가 들어설 틈은 없었다.
점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맞춰야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그에게 친밀감은 함께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정해진 틀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낯선 것을 수용하기보다,
익숙한 방식을 고수했고, 그 안에서만 관계를 유지했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노래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나만 너무 내 멋대로 했던 것 같아.”
우리가 그것 때문에 다툰 적은 없었기에,
그가 스스로 그런 말을 꺼낸 게 의외였다.
그 순간, 마음 한켠이 찌르르했다.
‘그래도 너도 알고 있었구나.’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닫힌 줄 알았던 마음을
아주 조금 열게 했다.
혹시 지금이라도 달라질까.
그런 기대가 아주 잠깐 스쳤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말뿐이었다는 걸, 나는 금세 알아차렸다.
잠깐의 희망은 스쳤고, 실망은 오래 머물렀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음악을 틀었고,
옷을 고를 때도 예전 그대로였다.
그 한마디 외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감정을 나누고 싶었다.
그는 감정을 나누는 일이 두렵고 낯선 사람이었다.
우리는 같은 노래를 들은 적이 없었고,
같은 감정 안에 머물렀던 순간도 거의 없었다.
지금 와서야 안다.
이건 단지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음악도, 옷도, 감정도.
그는 본능적으로
감정을 공유하는 일을 부담스러워했던 사람이다.
말로 감정을 주고받는 대신,
익숙한 소리와 형식 안에 숨어 있었고,
그는 감정을 스스로 통제 가능한 방식으로만 드러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나를 그의 자리 밖으로 밀어냈다.
나는 그의 세상에 들어가려 애썼지만,
끝내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노래를 들을 수 없는 사이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