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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생 Sep 20. 2024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대접하는 것.

H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편안한 느낌이 있어서일까, H와 함께하는 시간이 편안해서일까. 자연스럽게 숙소를 집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게 된다. 늦은 시간까지 밖에서 보낸 우리는 저녁을 못 먹어서 배가 고프다. 돌아오는 길에 파스타를 주문했다. 요리를 직접 할 수도 있지만, 그럼 아마 12시가 넘을 것이다.


주문한 크림파스타와 큐브스테이크는 포장용기에 왔다. 그냥 이렇게 먹기엔 아쉽다. 설거짓거리가 늘더라도, 예쁜 그릇에 담아 분위기를 내고 싶다. 나는 작고 기다란 접시에 음식들을 담는다. 직접 요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정성을 함께 담으니 제법 요리한 기분도 든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하면서도 편안한 주방과 식탁엔 H와 나 둘만 있다.


"와앙, 우리가 요리 직접 한 것 같아"


다행히 H가 음식을 마음에 들어 한다. H가 먼저 한 입을 나의 입에 넣어준다. 나는 음식보다 H의 사랑스러움이 좋았다. 그런데, 음식도 맛있다. 큐브스테이크에서는 짜장소스의 향이 약간 났고, 크림파스타는 넉넉한 크림에 새우와 베이컨, 비엔나소시지가 들어있다. H가 새우를 먹더니 정말 맛있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나는 그 미소를 또 보고 싶어서 새우를 양보한다. 7월 한 달간 입맛 없어하던 H가 잘 먹는 모습을 보니 참 좋다.


음식을 다 먹고 난 뒤, 식탁과 주변을 정리한다. 정리하는 마음은 꽤 후련하고 뿌듯하다. H는 나에게 가벼운 포옹으로 고마움을 표현한다. 효율을 생각하면 누군가 나의 정리를 방해하는 행동이 귀찮을 수 있지만, 자꾸만 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껴안고 있는 H의 행동이 사랑스럽다. 어쩌면 이런 행동들이 나의 마음과 몸을 자꾸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연료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 애교 한 번으로 내가 움직이도록 유도한 것일까? 그렇다면 H는 정말 고단수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대접한다는 것이 기분이 좋다는 것을 점점 깨달아간다. 식탁과 주방을 정리하는 손이 가볍고 경쾌하다.




무언가를 챙겨주고, 양보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행동이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H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아할지를 고민한다. H를 아침부터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참 감격스러운 일이다. 부산에 오기 전부터 내가 좋아하던 차인 달빛 걷기를 내려주고 싶었다. 달빛 걷기는 달큼한 배의 향에 쌉싸름한 향이 섞인 오설록의 차다. 나는 다도를 해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정성을 담아서 내려주고 싶었다. 다도를 해본 H가 보기에 내가 얼마나 어설퍼보일지 걱정이 된다. 그래도 한번 용기를 내 도전해 본다. 뜨거운 물을 끓이고, 넓은 그릇에 달빛 걷기를 담았다. 티팟이 없어 아쉽지만, 괜찮다. 타이머를 정확히 2분에 맞춰 차를 우린다. 전날 미리 얼려두었던 어설픈 얼음들을 잔에 넣고, 차를 그 위에 부었다.


아침 외출 준비로 부산한 H에게 옆방으로 와서 차를 한잔 마셔보길 권한다. H가 잠시 여유를 갖고 한 모금 마셔보더니, 맛있다고 한다. 앞으로 차를 종종 내려서 같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져본다.

 



H가 추천해 주었던 숙소는 내가 더 좋아했는데,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대문을 닫고 들어오면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분위기가 된다. 이 숙소는 뷰도 좋았다. 멋진 뷰를 배경으로 H의 아름다운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숙소 바깥 테라스에는 자쿠지가 있었는데, 그곳에 웰컴푸드와 드링크를 예쁘게 플레이팅 해놓고 H가 그곳에 잠시 머물도록 유도한다. 웰컴푸드의 플레이팅에도 나름 신경을 썼다. 한 투명잔에 샤인머스켓을, 보다 낮은 잔에는 초코 막대과자를 담았다. 낮은 접시에는 크림치즈를 정갈하게 담고 H가 좋아할 만한 코코넛 음료를 곁에 두었다. H가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며 좋아했다. 그녀는 내가 사진을 찍어주는 동안 그 근처에서 머물면서 음식과 음료를 마신다. 그래도 H는 음식과 음료 자체보다는 사진에 더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시원한 배경과 잘 어울리는 H의 모습에 땀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재밌게 사진을 찍어준다.



둘 만 함께하는 공간에서의 추억, 그 안에서 나의 마음엔 일관적인 공통점이 있다. H에게 마음을 다해,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준다.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주면, H가 짓는 약간의 미소에도 기분이 참 좋아진다.


나는 이것을 '기쁨 미러링'이라 부르고 싶다.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닌 사람이 나로 인해 기쁨을 느끼는 것. 그것을 보면서 나 또한 함께 기뻐지는 것.


결국엔 내가 기뻐지기 위해 약간의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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