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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사는 사람

by 여백

나는 한때 스스로를 사회 부적응자라고 생각했다. 단순한 아르바이트도 유난히 버거웠고,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이 견디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적응한다고 했지만, 나는 아무리 오래 있어도 적응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 힘들지?’

‘왜 나는 익숙해질 수 없을까?’


회사에서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그들이 내게 익숙해지기도 전에 나는 이미 지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에게 되묻게 되었다.


‘나는 진짜 사회 부적응자인가?’



어느 날 갑자기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타났다.

“너도 이쪽이야.”

그가 문득 그렇게 말했다. 나도 예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그 말 한마디가, 내가 오랫동안 풀지 못한 의문들을 풀어주었다.


나는 돌이켜 생각했다.

그동안 왜 그렇게 회사 생활이 힘들었는지.

왜 단순한 노동도 버거웠는지.

왜 익숙해질 법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 없었는지.



그건 나와 맞지 않는 환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규칙적인 구조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누군가는 변화와 창작이 필요한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공부를 계속하면서 조금씩 나의 기질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민 끝에 선택한 공부조차도, 처음부터 완전히 나에게 맞는 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 어쩌다 보니 내게 맞아간 것이지, 처음부터 정답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갈 필요는 없다는 걸.

누군가는 숫자로, 누군가는 언어로, 누군가는 논리로, 누군가는 감각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나는 예술적인 감각과 감수성을 활용하는 사람이었고, 규칙적인 틀 안에서 일하는 삶보다는 창조적인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더 자연스럽게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살아가는 방식도 달라야 했던 거다.


그리고 그래서, 나는 나의 이해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길을 만들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결국, 길을 찾는다는 건 처음부터 정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돌고 돌아, 시행착오 끝에 나에게 맞는 형태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길 위에서 내 옷을 입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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