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글을 고치는 일
이 글은 내 것이 아니다. 내 생각도, 내 문장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이 글을 매만진다. 맞춤법을 바로잡고, 흐름을 정리하고, 때로는 의미 없는 문장을 살려낸다. 문득 든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남의 글을 다듬을 뿐인지, 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사람이 아닌데.
이 일이 쉽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 창작이 아니라고 해서 단순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더 어렵다. 한 문장 속에서 내가 아닌 타인의 흔적을 유지해야 하니까. 잘 다듬어도 내 흔적은 남지 않고, 엉망이 되면 욕을 먹는 자리다. 적당히, 매끄럽게, 눈에 띄지 않게. 마치 실존하지 않는 유령처럼.
사실 이것은 단순한 글 작업이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한 단면이다. 누군가는 써야 할 글을 나에게 던지고, 나는 그 글을 말끔하게 다듬어 다시 돌려준다. 거기서 나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효율성과 기한, 그리고 '완성도'가 전부다. 누군가가 쓴 글이지만, 그 안에는 어쩌면 나의 시간을, 나의 노동을 녹여야 한다. 그리고 그 대가는? 그야 당연히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평가로 돌아온다.
어른이 된다는 건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라던가. 싫어도 해야 하고, 억울해도 내색하지 않아야 하고, 감정은 묻어두고 그저 맡은 일을 해내야 한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한다. 그래, 그러면 나도 그래야겠지. 하지만 가끔은 조금 억울하다. 이 글을 완성한 건 나인데, 내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
글을 다듬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하는 일은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 이 문장을 수정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만들어낸 문장도 아닌데.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작은 손길들이 쌓여 하나의 결과물이 되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어차피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노동으로 완성되는 법이니까.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는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만들고, 누군가는 기획서를 정리하며, 누군가는 회의를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지 아는 사람은 정작 많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에는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세상은 대부분의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마치 글이 스스로 완성되는 것처럼, 마치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그래도 오늘도 노트북을 연다. 묵묵히 글을 다듬는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어쩌면, 이렇게 남의 문장을 다듬는 일처럼, 내 삶도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다듬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다듬고 있는 것은 남의 문장이지만, 결국 나 역시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조금씩 형태를 잡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