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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수용성, 분노는 지용성

by 여백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문득 고개가 끄덕여졌다. 감정이 물질의 성질을 가질 수 있다니. 일찍이 김초엽의 「감정의 물성」 또한 그러한 맥락의 소설 아니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감정을 조형화한다는 소설 속 설정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는 이미 감정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그 성질을 따르는 것 같다.



우울은 수용성


우울할 때, 사람들은 흔히 샤워를 한다. 몸을 씻는다고 마음까지 씻기는 건 아니지만, 물이 닿고 온기가 스며들고 거품이 흘러내리는 동안 머릿속이 조금은 정리된다.

눈물도 물이고, 차가운 물을 한 컵 마시거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잠시나마 우울이 희석되는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기분이 가라앉을 때, 나는 샤워기로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흐르는 물줄기를 가만히 바라보곤 한다. 어떤 사람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어떤 사람은 바다를 찾아가고, 어떤 사람은 비 오는 날 창문을 열어둔다. 모두 물을 통해 감정을 정리하는 방식들이다. 우울은 물에 녹아 사라진다.



분노는 지용성


하지만 화는 다르다. 아무리 물을 끼얹어도, 분노는 씻겨 내려가지 않는다. 그런데 화가 났을 때, 기름진 음식이 당긴다. 짜장면, 삼겹살, 치킨, 버터 잔뜩 바른 빵. 묵직하고 기름진 음식이 입안을 가득 채울 때, 분노도 함께 사라지는 것만 같다.


분노는 기름에서 기원한 감정이다.


한 번 불이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고, 번져가며 주위를 집어삼킨다. 그러니 기름은 기름으로 다스려야 한다. 불길이 타오를 때, 뜨거운 기름을 부으면 불은 더욱 거세지지만, 차가운 기름을 천천히 부으면 오히려 불길이 잦아든다.

화가 난 날,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나면 묵직한 기름기가 입안을 감싸고 그 감각이 분노를 덮어버린다. 뜨거운 감정이 서서히 식어가는 순간, 기름은 불을 키울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위를 잠재우는 덮개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감정을 물리적으로 해소하는 법을 알고 있다.

생각해 보면, 슬플 때 찾는 음식과 화가 났을 때 찾는 음식은 다르다.

슬플 때는 따뜻한 국물, 부드러운 죽, 달달한 디저트가 당긴다.

입 안을 부드럽게 감싸고, 속을 따뜻하게 채우는 음식들.


하지만 화가 났을 때는?

매운 것, 기름진 것, 단단한 식감을 가진 것. 이를 악물고 씹을 수 있는 것.

강한 맛과 질감이 입안을 지배할 때, 그 순간만큼은 화가 뭉개지는 기분이 든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우울은 물에 풀리고, 분노는 기름에 녹는다는 걸.

어쩌면 감정은 단순한 정신적 경험이 아니라, 우리 몸이 다루는 하나의 물질적인 흐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을 녹이고 흘려보내며 살아간다. 어떤 날은 물에 감정을 씻고 어떤 날은 기름에 감정을 녹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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