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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상상의 시나리오를 좋아한다

by 여백


어느 날, 기차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런데 문득,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선로에 발이 끼이면 어떡하지?
누군가 나를 떠밀면 어떡하지?
사랑하는 조카가 납치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가능성은 희박했다. 아니,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도 머릿속은 이미 그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영화 필름처럼,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지나갔다. 그러자 불안이 더욱 커졌다. 몸이 굳었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가만히 서서 생각했다.

“왜 나는 이런 불안을 멈추지 못할까?”




불안은 나를 속인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재난적 사고(Catastrophic Thinking)’라고 부른다.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고, 그것이 마치 곧 현실이 될 것처럼 믿어버리는 것. 우리의 뇌는 원래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위험을 감지하고 대비해야 생존할 수 있었던 원시 시대의 본능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우리는 맹수에게 쫓기거나,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뇌는 너무 조용한 순간에 불안을 만들어낸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 불안을 채우기 위해 상상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낸다.


나는 불안을 멈추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떤 대처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불안이 만들어낸 시나리오들은 허점투성이였다. 기차선로에 끼일 확률은 0에 가깝다. 조카가 납치될 가능성도 극히 낮다. 그리고 설령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나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신고할 것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불안이 만든 영화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관객이었을 뿐이었다.




불안을 다루는 방법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불안이 휘몰아칠 때 다음과 같은 방법을 떠올리기로 했다.

1. “이건 현실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시나리오일 뿐이다.”

불안한 생각이 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는다. 상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2. 가능성을 따져 본다.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될까?”

막연한 공포는 논리적으로 따져 보면 말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3. “설령 그런 일이 생겨도, 나는 해결할 수 있다.”

해결 방법을 떠올리면 불안은 줄어든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강하고 유능하다.


4. 주의를 돌린다.

찬물로 손을 씻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주변 사물을 하나하나 묘사해 본다. 즉각적으로 현실의 감각을 깨우면 머릿속 불안이 흐려진다.


5. “불안은 나를 보호하려는 신호일뿐이다.”

불안이 찾아오는 이유는 결국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고, 안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 본질을 이해하면, 불안도 덜 낯설어진다.




불안을 품고 살아가는 법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에 압도될 필요도 없다. 나는 이제 불안이 찾아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네가 만들어낸 시나리오, 흥미롭긴 하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빠져들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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