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가면 세상의 소음이 하나둘 줄어든다. 자동차 경적도,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도, 창문 너머로 들리던 바람 소리조차 조용해진다. 이런 시간에는 몸이 쉬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더 깨어난다.
늦은 밤의 허기는 유독 교묘하다. 배가 고픈지도 몰랐던 몸이 갑자기 존재를 주장하며 소리친다. 그렇다고 대충 때우기에는 아쉽다. 그러다 문득, 냉장고 속 남은 피자가 떠오른다. 낮에는 시들했던 그 한 조각이,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음식처럼 느껴진다.
전자레인지에 돌릴까, 오븐에 구울까 고민하다가 프라이팬을 꺼낸다. 바닥에 살짝 물을 떨어뜨린 후 뚜껑을 덮어둔다. 이 작은 정성이 피자를 살려낸다. 치즈가 다시금 녹아 흐르고, 도우는 바삭하게 살아난다. 나는 기대를 가득 품고, 조심스럽게 한 조각을 집어 든다.
첫 입을 베어 무는 순간, 혀끝에서 작은 기쁨이 터진다. 하루의 피로가 사르르 녹는 기분이다. 조금 짜고, 조금 기름지고, 완벽하게 따뜻한 온기가 입안을 채운다. 이 한 조각이 없었다면 오늘 밤은 어땠을까? 피자 한 조각이 주는 만족감은 단순한 포만감이 아니다. 오늘 하루,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던 피로와 고민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위로 같은 것.
창밖을 보니, 어느새 도시는 잠들고 있다. 나는 피자의 마지막 한 조각을 천천히 음미한다. 아마도 내일 아침이면 이 작은 사치가 약간의 후회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늦은 밤과 피자 한 조각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