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싸울 때마다 기차표를 예매한다.
이번엔 정말 떠날 거야, 다짐하며 창을 열고 가장 빠른 시간의 열차를 고른다.
출발역은 언제나 같고, 목적지는 달라지지만 그게 어디든 상관없다.
그저 떠난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매번 같은 패턴이다.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칠 때, 나는 무작정 떠날 방법을 찾는다.
지갑을 열고 카드번호를 입력하는 동안에도 손이 떨린다.
‘이번에는 정말로 가야 해.’
결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 어딘가로 향하는 기차표가 내 것이 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대화.
애초에 떠날 생각이었다면, 그 기차표를 예매할 때 바로 집을 나섰겠지.
그러나 나는 예매만 하고 그대로 서서 화면을 들여다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냉정을 되찾고, 다시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한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목소리를 듣고, 마음속의 얽힌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간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말을 믿고 싶지만, 어쩌면 그것도 기차표처럼 일종의 보험일지도 모른다.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한 채, 그 가능성 안에서 머물기 위해.
싸움이 끝나고 나면, 다시 창을 열어 취소 버튼을 누른다.
수수료가 발생했다는 안내 문구가 뜬다.
‘싸움비’라고 부르면 될까.
나는 싸울 때마다 비용을 지불한다.
단순한 돈이 아니라, 마음의 에너지를 쏟고, 불안을 견디고, 결국 다시 남기로 결정하는 데 드는 보이지 않는 비용.
기차표를 예매하고, 취소하고, 다시 예매하고, 다시 취소한다.
떠날 수도 안 떠날 수도 있다.
오늘도 나는 싸움비를 지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