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일상적인 대화가 뜻하지 않게 깊이 있는 대화로 이어질 때가 있다. 그날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는 자꾸 다른 사람들과 스스로를 비교하게 되는 못난 마음과 그 비교 끝에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달았다는 것에 대해 반복해 말했다. 그는 기억 못 하겠지만 이 어김없는 자기 학대의 패턴은 늘상 있는 일이었다. (다행히 그날의 하소연 값은 맥주였으니 남는 장사였다.) “결국 나도 그들 중 일부려나?”라는 앞뒤 자른 말에서 그가 가진 내면의 혼란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나만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으로서 그가 느낀, 자신이 이루어낸 것과 다른 이들이 가진 것들 사이에서 불안감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반드시 ‘부족함’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탐구하고,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각자 고유한 색깔을 지닌 존재들이다. 그중에서 각각은 이미 나름대로 독특한 길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기준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지녔을 것이다.
취기가 한창 오르고 이미 물을 한참 타 멀건해진 국물만큼이나 멀건하게 그에게 칭찬을 건넸다. 그는 부끄럽다는 듯, 과찬이라며 절레절레했다. 아마 내가 너무 멀건히 칭찬을 했나 보다. 하지만 그런 겸손이 오히려 더 그의 깊은 속내를 드러내 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자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가치를 측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런 비교가 무조건 자신을 왜곡시키거나,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성장하고 더 나은 자신을 추구하는 과정일 수 있다. 비교를 통해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 그 과정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또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모습이 있는 사람이야 말로 ‘진짜’처럼 느껴진다. 나에게 있어 진국인 사람은 단순히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이 아닐까. 이는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한 점이다.
그날의 기나긴 대화에서 ‘뛰어난 사람들은 결국 혼자서도 잘하고 도움은 그다지 불필요할 수 있다’란 문장이 화제로 떠올랐다. 그래, 오히려 너무 뛰어난 사람들은 차라리 혼자서 하게 내버려 두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뛰어난 사람들도 때로는 ‘외로움’을 느끼고,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얻으려 할 때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어떤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당연히 존재할 것이다. 세상에 완벽이란 없으므로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자’들은 다른 누군가의 의견이나 새로운 시각이 항상 필요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중요한 실마리를 찾았다. 결국 ‘뛰어난 사람’이라는 기준은 상대적인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지식이나 능력도 절대적일 수 없다. 그렇기에 결국 ‘누구와 대화했는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는가’가 그 존재의 가능성을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는지 결정하는 요인이 아닐까. 대화는 서로의 관점을 교환하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존재의 과정이다. 그들이 어떤 존재 인지는 그들이 나눈 대화를 통해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부족하다’라는 생각에 휩싸이곤 한다. 하지만 부디 그 감정이 너무 지나치거나 잠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이번 불안감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왜냐하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낄 때 충분히 도달할 수 있었던 목표에 지레 겁먹고 포기해 버리거나, 아니면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비난하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족하다’는 감정을 밑거름 삼는다면 우리는 성장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그런 고뇌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 점에서 우리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자기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그 길 위에서 성장해 가고 있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