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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논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by 황인갑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2022.12.8. 에릭 와이너 지음/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2021

자유 논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기이자, 그들의 삶과 작품 속의 지혜가 우리 인생을 개선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여러분은 이 책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우리는 대개 철학자들을 육체 없는 영혼으로 여긴다. 내가 고른 철학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신체를 가진, 활동적인 존재였다. 트레킹을 하고 말을 탔다. 전쟁터에서 싸우고 와인을 마셨으며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실용적인 철학자였다. 그들의 관심은 삶의 의미가 아닌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있었다.


그들은 완벽하지 않았다. 여러 자잘한 결점이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때때로 몇 시간 동안이나 무아지경에 빠졌다. 루소는 사람들 앞에서 몇 번이나 엉덩이를 깠다. 쇼펜하우어는 자기 푸들과 대화를 했다. (니체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자.) 어쩌겠는가. 지혜는 고급양복을 입는 일이 드물다. 뭐,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p.14)


3.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여러분은 아침에 일어날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어나나요?

로마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도 아침은 커다란 적이었다. 그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침대에서 ‘5분만 더!’를 외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체로 침대에서 나오는 데 성공했다. ‘침대에서 나오는 방법‘을 알아서가 아니라, ‘굳이 왜 그래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만한 대답을 찾았기 때문이다.(표지)


아침은 강렬하고 모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한편으로 아침은 희망의 냄새를 풍긴다. 모든 새벽은 곧 재탄생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아침은 몽근한 절망의 냄새를 풍긴다. 자기 삶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침을 싫어할 가능성이 크다. 불행한 삶에 아침은 영화 〈행오버 3〉의 오프닝 장면과도 같다. 다가올 끔찍함의 맛보기랄까.(p.25)


4.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강조했다. 여러분은 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소크라테스에게 철학과 대화는 사실상 동의어였다. 소크라테스는 온갖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정치인과 장군, 공예가뿐만 아니라 여성과 노예, 어린아이들에 게도 말을 걸었다. 온갖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지만 주제는 반드시 중요한 것이어야 했다. 소크라테스는 잡담에는 관심이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사랑하긴 했지만 그는 대화를 그저 자신이 가진 도구 중 하나로 본 것 같다. 이 모든 현명한 훈수질에는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웠다.(p.52)


5. 루소는 걷기를 좋아했다. 여러분은 걷는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토록 많은 철학자들이 걷기를 즐겼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물론 소크라테스도 아고라를 거니는 것을 다른 무엇보다 좋아했다. 니체는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전부 걷기에서 나온다 “라고 확신하며 종종 기운차게 스위스 알프스 산맥으로 두 시간가량의 짧은 여행을 떠났다.


루소는 하루에 30킬로미터 이상을 걷곤 했다. 한 번은 제네바에서 파리까지 480킬로미터를 걸은 적도 있었다. 제네바에서 파리까지 가는 데에는 2주가 걸렸다. 루소에게 걷기는 숨쉬기와 같았다. ”나는 멈춰 있을 때에는 생각에 잠기지 못한다. 반드시 몸을 움직여야만 머리가 잘 돌아간다.(p.93)


6.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10가지 방법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거를 받아들일 것


친구를 사귈 것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 것


호기심을 잃지 말 것


프로젝트를 추구할 것


습관의 시인이 될 것


아무것도 하지 말 것


부조리를 받아들일 것


건설적으로 물러날 것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p.475)


7. 여러분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몽테뉴는 죽음을 동경하지 않았다. 삶을 동경했다. 하지만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이러한 삶에 대한 동경을 온전히 실현할 수 없음을 잘 알았다. 우리는 삶과 죽음이 순차적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먼저 살고, 그다음 죽는다. 하지만 몽테뉴는 사실 “죽음이 우리 삶 속에 평생 녹아들어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아파서 죽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몽테뉴는 내가 가능할 거라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죽음을 생각한다. 그는 죽음에 대해 숙고할 뿐만 아니라 죽음을 가지고 놀고 심지어(이상하게 들릴 거라는 거 안다) 죽음의 친구가 된다. “죽음이 내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함께했으면 좋겠다. 죽음은 내 삶의 커다랗고 중요한 일부다.”(p.492)


8. 기차여행을 통해 14명의 철학자들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1부 새벽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루소처럼 걷는 법


소로처럼 보는 법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


2부 정오


6.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7.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8. 간디처럼 싸우는 법


9. 공자처럼 친절을 베푸는 법


10. 세이 소나 곰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


3부 황혼


11.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12.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는 법


13.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14. 몽테뉴처럼 죽는 법(차례)


선택논제


1. 포르노는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고 예술은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러분은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또한 좋은 예술은 정념을 초월한다. 욕망을 키우는 모든 것을 고통을 키운다. 욕망을, 쇼펜하우어의 표현에 따르면, 의지를 줄이는 모든 것은 고통을 완화한다. 예술작품을 바라볼 때 우리는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포르노가 예술이 아닌 것이다.


포르노는 예술의 정반대 지점에 있다. 포르노의 유일한 목적은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욕망을 자극하지 못하면 그 포르노는 실패작으로 여겨진다. 예술에는 더 고귀한 목표가 있다. 체리 한 그릇을 그린 정물화 앞에서 느껴지는 반응이 배고픔이라면 그 작품을 그린 예술가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p.164)


동의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2. 에피쿠로스의 쾌락이 최고선이라는 말에 공감하나요?

‘은밀한’ 쾌락이나 ‘숨겨진’ 쾌락 같은 말을 할 때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이 인간 본능에 수치심이 깃들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쾌락을 최고선으로 여겼다. 다른 모든 것(명성과 돈, 심지어 덕까지)은 그것이 쾌락을 더 증가시키는 만큼만 중요하다.


에피쿠로스는 늘 그렇듯 도발적인 문체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명예가 있는 자와 헛되이 그들을 찬양하는 자에게 침을 뱉는다.” 쾌락은 우리가 그 자체로서 욕망하는 유일한 것이다. 그 밖의 모든 것, 심지어 철학까지도 , 쾌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한 수단이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이 최고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어린아이는 무엇에 반응하는가? 쾌락과 고통이다.(p.197)


공감한다.

공감하지 못한다.

3. 간디의 비폭력에 대해 찬성하나요?

“모든 폭력은 상상력의 실패를 나타낸다. 비폭력은 창조성을 요구한다.”


비폭력이 효과를 발휘하지 않은, 아니 발휘할 수 없었던 명백한 사례는 아돌프 히틀러와 관련되어 있다. 1939년과 1940년, 간디는 히틀러에게 평화의 길을 선택하라고 촉구하는 편지를 여러 차례 보냈다. 그 후 곧바로 간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명백히 역사상 가장 잘못된 발언 중 하나였다.


비폭력 저항이 언제 어디에서나 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서 간디의 사상 자체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간디가 말한 사랑의 법칙은 중력보다는 무지개에 가까울지 모른다. 특정 조건에서 아주 가끔씩만 보이지만 한번 나타나면 그 무엇보다 더 아름다운 무지개 말이다.(p.289)


찬성한다.

찬성하지 않는다.

4. 인간이 선한 것인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맹자는 우리 모두가 잠재적 선함을 지닌다고 말한다. 황폐해진 산이 계속 새싹을 틔우듯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사람 안에도 잠들어 있는 친절이 있다. “제대로 거름을 주면 못 자랄 것이 없으며, 거름이 없으면 모든 것이 시들어 죽을 것이다.”


공자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정말로 인간 본성이 원래 선한 것이라면 왜 세상은 이토록 잔인할까? 칭기즈칸에서 히틀러까지, 인류의 역사는 피로 쓰여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걸, 텔레비전을 틀거나 노트북을 열면 공자님도 아실 거라고요. 뉴스에는 온통 나쁜 소식뿐이다. 테러 공격과 자연재해, 정치싸움, 친절은 휴업 중이다. 또는,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인다.(p.319)


선하다.

선하지 않다.

※ 토론에서 ‘인상 깊었던 한 마디’와 토론 소감을 나눠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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