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살아야지, 열렬히 살아야지

연탄을 구매하다

by 박현주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 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들선들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연탄시인으로 불리는 안도현 님이 쓰신 연탄 시 시리즈 3편이다.
안도현 님은 몰라도 연탄재는 안다는 분들이 많다. 나 역시 그렇고.

처음 이 시를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함부로 대했고 쓰레기로만 보이던 연탄재가 대단해 보이고, 함부로 대하면 안 될 것 같은 조심성 마저 생겨났다.
한동안 하는 일들에 마음이 느슨해지고, 나태해질 때면 연탄재를 떠올리며 뜨겁게 살려고 애쓴 날도 부지기수였다.





오늘 아침 7시 30분, 당근슈퍼를 애정하는 신랑이 연탄을 사놨다고 해서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지난겨울, 한 장에 750원씩(배달료포함) 했기에 장당 200 원하는 연탄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400장이라고 해서 가볍게 생각하고 나섰다.

20여분을 달려 건천에 도착했고 열심히 날랐다.
신랑과 아들은 열심히 날랐고, 나는 트럭 위에서 열 을 맞추고 줄을 세워나갔다.

싣는데 30분도 안 걸려 금세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들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콧잔등에는 연탄냄새라도 맡은 듯 엄지손톱크기만 한 새카만 흔적이 묻어있었다.
불평불만 하나도 없이, 묵묵히 따라와 꾀 하나 부리지 않고 돕는 아들을 보니 허리가 아프다고 생각했던 마음조차 부끄러워졌다.





"디나?"
"응"
"조금만 힘내, 고지가 눈앞이다. 다 해간다"

2~3번 나를 것을 남겨두고 신랑이 한숨 돌리자며 엉덩이를 바닥에 붙였다.
아들은 차가운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마셔댄다.
기특하고 고마웠다.

다 내리고 나니 590장이다. 왠지 많더라니.

2개씩 한 번에 잡는 연탄집게를 쓰다 보니 끝나갈 쯤에는 쉽게 잡고 빼는 요령도 생겼다.
싸게 산 것도 기분이 좋았지만 묵묵히 일해준 아들에게 고마웠고, 열정충전이 필요한 때에 연탄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그 시간만큼은 힘들지 않았다.



연탄창고



재어놓고 나니 부자가 되어있다.
곳간이 차면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듯이 연탄창고가 차 있을뿐더러 저렴히,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든든해졌다.

다들 용을 써서 그런지 씻자마자 녹초가 되었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이 고되지 않았던 이유는 가족이 함께했다는 사실과 끈끈함, 돈을 절약했다는 사실이다.

연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뜨겁게 타오르는 연탄처럼 뜨거운 사람이고 싶고, 따뜻한 역할을 해주는 사람, 악한소리 나 나쁜 소리는 연탄구멍을 지나는 바람처럼 흘려보내는 사람이고 싶어졌다.

이제는 연탄을 볼 때마다 ' 뜨겁게 잘 살고 있나?' 며 물음을 던질 것 같다.

연탄이 나를 연단시키고 있다.
연탄은 내 인생에서 끝까지 데려가고 싶은 훌륭한 채찍이다.

경험은 버릴 것이 없다더니 연탄하나로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연탄 같이 뜨겁게 살아야지. 열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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