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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Dec 22. 2022

사랑으로 낫게 해 줄게

닭죽 한 그릇에 담긴 마음

둘째가 아프다. 우리 식구 중 최고의 건강인인데, 며칠째 계속 아프다고 한다. 약발도 안 듣는 것 같다. 시시때때로 배를 문지르고 있다.

아이가 아프면 꼭 나의 잘못인양 죄책감이 들곤 한다.

특히, 감기보다 장염이면 더더욱.


나는 유독 둘째가 아프다 하면 짜증이 난다.

그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큰아이가 아프다 하면 짜증낼여유도 없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지만 작은아이가 아프다 하면 짜증부터 낸다. 진짜 못된 어미다.

나도 매번 반성한다. 도대체 왜?

아픈 게 아이 잘못도 아니고 왜 짜증으로 아픈 애를 더 아프게 만드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딸 : "새벽에 아팠는데 새벽에 말하면 엄마가 짜증 내니까 말 안 했어"

나: "아니야, 내가 언제? 네가 아프면 속상해서 그러지, 절대 아니야"


라며 둘러댔지만 거짓말이 들킨 아이처럼 버벅거렸다.

유독 건강해서 일 년에 감기도 몇 번 잘 안 하는 아이가 아프다 하니 속도 상했고, 안 아플 거라 믿는 아이였기에 짜증이 난 것도 같았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면 더 아픈 것처럼.


그날 딸아이의 말 한마디가 머리와 가슴을 마구 때렸다. 한동안 계속 내 머리에 남아서 불쑥불쑥 떠올랐다.


'나 진짜 못된 엄마, 몹쓸 엄마다. 세상천지 이런 엄마가 어디 있나? 못났다. 못났어'


한동안 날 엄청 꾸짖었고 나무랐다. 혼나도 싸고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게 당연했다.

그 아이의 말이 잠잠히 가라앉을 때쯤 아이의 장염이 재발했다.


딸 : "엄마, 나 닭죽 먹고 싶어, 파는 쇠고기 죽은 비린내 나서 못 먹겠는데 엄마닭죽은 진짜 맛있거든. 오늘 닭죽 해주세요"

나 : "오야, 오야"


나는 그 길로 닭을 사 와 바로 닭죽을 끓였다.

죽이 대부분 그렇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크게 할 일이 없다. 닭을 씻어 큰 통에 넣고, 잘 만들어져 나온 삼계탕용 약초봉지하나 투척해서 푹 끓이면 된다.


미리 물에 담가둔 찹쌀 한 그릇, 야채 다진 것, 소금, 후추만 있음 파는 것보다 싸고 양 많은 죽을 실컷 먹을 수 있다.

한참 닭을 삶고 건져내 한 김 식혀 닭의 살만 라냈다. 그런 뒤, 찹쌀을 넣고 다진 마늘도 왕릉처럼 봉긋하게 한 숟갈 떠 넣고 저어가며 끓인다.

나는 양파와 당근을 주로 다져서 넣는 데 있는 줄 알았던 당근이 안 보여 파로 대체했다.

나름 초록초록하니 당근 넣었을 때랑 다른 느낌이었다. 그러나 맛은 더 훌륭했다.

그렇게 아이에게 한 그릇 먹이고 나니 미안한 감정도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죽을 삼키며 엄마를 향했던 미움과 속상함도 함께 삼켜지길 바랐다.


그렇게 이틀간 엄청 먹어대더니 탈탈 털고 회복해 나갔다. 아이가 아프다 한건 배가 아팠던 것보다 엄마의 사랑이 더 고팠던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크고 나 스킨십도 많이 줄어들었다. 어쩌면 기회였을까?


"엄마손은 약손, 효수배는 똥배"


아이의 배를 만지며, 어릴 적 엄마가 불러준 노래를 나도 부른다. 그러다 그 시절 내가 오버랩되며 그 노래가 가슴에 와 박힌다.


'나도 이렇게 사랑받고 자랐는데 나는 왜 소중하디 소중한 내 새끼에게 이것밖에 못했을까?'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나는 나름 완벽한 엄마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고 교만이었고 자만이었다.

이번일로 진정한 엄마의 사랑이 무언지 다시 한번 되새겨보았다.


덩치만 컸다고 다 큰 게 아닌데, 내가 내 아이를 너무 몰랐다.

70~80살이되어도 내 아이들은 계속 나이가 들며 익어갈 테고 탄탄한 나무뿌리를 가질 수 있게 잘 키워줘야 되는데, 그게 바로 지금이란 것도 안다. 더는 늦지 않게 사랑을 듬뿍 줘야겠다.


세상살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엄마닭죽'찾으며 한걸음에 달려올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이 되게 더 잘하고 더 사랑해 주련다.

'사랑과 위안, 위로까지 듬뿍 담은 닭죽 평생 끓여줄게.'

사랑듬뿍 닭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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