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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Apr 21. 2023

계속 먹고 싶다

푸딩 같은 계란찜

주부딱지를 단지 17년이 지났다.

가장 만만한 반찬재료는 뭐니 뭐니 해도 계란이다.

구워 먹고,  삶아 먹고, 쪄서 먹는 가장 만만한 반찬이기도 하다.


계란프라이와 계란말이는 심심하면 만들던 반찬이라 눈감고도 할 수 있지만, 나에게 유독 어려운 계란요리는 바로 계란찜이다.

쉽게 안 해질뿐더러, 그것조차 전자레인지만 이용해서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내가 만드는 계란찜은 물기가 있어도 닭가슴살을 먹는 거처럼 퍽퍽하고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예전부터 '계란찜 맛나게 만드는 법'을 검색해 보면 중탕을 선호했고, 중탕을 해도 별반 차이가 없다는 댓글들을 보게 되면 내 요리스킬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 거란 기대가 한숨에 무너지기도 했다.


만만해 보이는데 왜 유독 쉽지 않고 번거로운 거지?

의문이 쌓여 폭발하기 직전일 상태에 새로운 방법을 한 가지 알게 되었다.


바로 체를 사용하는 것!

베이킹할 때 고운 입자를 걸러내기 위해 쓰는 그 체를 사용하여 계란 푼 물을 3번 딱 거른다.



계란 1개(큰 것)에 물 100ml를 넣어 흰자와 노른자를 잘 섞어준다.

보통 국그릇을 사용할땐 계란3개를 넣어 만들었다.

그 후 기호에 맞게 소금, 후추, 깨소금, 참기름을 넣어주면 된다.

이제 마지막 하나!!
중탕이 아닌 찜기에 쪄보았다.
떡을 찌듯이 계란물이 담긴 그릇을 랩으로 봉쇄하고 채반에 올려 뚜껑을 덮고 센 불로 끓이다가 물이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낮춰서 15분을 끓이면 끝이다.
요리라고 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쉽고, 생각보다 번거롭지도 않았다.

진즉 한번 해볼걸, 그동안 이렇게 만들지 않았던 점이 너무 아쉬웠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방식이 언제나 옳고 쉬운 방법이라며 굳건히 믿어왔는데, 틀린 건 아니지만 다른 방법이 무수히 많다는 걸 다시 한번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늘 전자레인지를 이용했고 체도 쓰지 않았으며, 그냥 하는 요리였다 보니 먹고 남은 그릇에는 계란이 눌어붙은 흔적이 역력했고 반갑지만도 않았다.
철수세미가 필요한 설거지거리였다. 그럼에도 내 방식을 꿋꿋하게 고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융통성이 제로였다.

계란요리로 맛없기 참 쉽지 않은데 내 계란찜은 그저 그랬다.

들은 것도 있고 본 것도 있으니 체를 사용해서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계란물을 준비해 랩을 씌우고 채반에 올렸다. 채반위로 물이 약간 올라오게 담아놓고 일단 뚜껑을 덮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불을 중불로 내려 15분 타이머를 맞춰놓고 다른 일을 했다.


춤추는  계란찜



타이머가 울렸고 완성된 뜨거운 계란찜을 조심히 꺼내본다.
머선 일이고!! 계란물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됐다. 됐어.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고!'

계란찜 하나해놓고 어깨뽕은 올라갈 데로 올라갔다.

퇴근한 신랑에게 계란찜부터 먹어보라고 그릇을 앞까지 당겨와 권해보았다.
입이 대단하신 분이라 여간해서 칭찬받기는 어려운데 오늘은 칭찬을 얻어냈다.

'오~~~ 나 좀 하는데?'라며  또 어깨가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한다. 별일 아니지만 칭찬 한마디에 셰프가 된 것처럼 의기양양해졌다.

일개 요리지만 이번일을 통해 내 생각만 고집할게 아니구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이 정답일 수는 없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도 반찬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
나는 아직도 자라고 있는 18년 차 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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