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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May 04. 2023

미역오이냉국의 계절이 돌아왔다

미역오이냉국

여름이 되면 무조건 만드는 음식이 있다. 여름이 끝날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만드는 음식이기도 하다.
바로 "미역오이냉국"이다.

밖에서 일하는 신랑의 열을 내려주기 위함이 가장 크고 오이와 미역을 좋아해 여름 내내 해줘도 물리지 않고 잘 먹는다.

올해는 유독 여름 아닌 여름이 빨리 찾아왔다.
그러다 보니 냉국을 만드는 시기도 좀 당겨진 듯하다.

냉국을 주야장천 만들어야 하다 보니 오이모종 심는 일도 봄에 해야 되는 숙제 중 하나다.


오이모종



올해도 어김없이 오이모종을 심었다. 오이는 줄이 엄청 길게 나가기 때문에 줄이 쭉쭉 타고 나갈 수 있는 곳에 심어둔다.
푸릇한 잎을 보며 파릇파릇하게 달릴 오이를 상상해 본다.
오이를 보며 많이 많이 열어달라는 부탁을 전했다.


조선오이는 미쳐 못 따게 되면 노각무침도 해 먹고 그냥 오이보다 부드러워서 좋긴 하나 끝부분이 쓴맛이 날 때가 있어서 약간 단단한 일반 진초록의 오이를 나는 더 추구한다.

식당에서 나오는 냉국은 맛이 엄청 강하다. 귀밑턱아래서 부터 침이 당겨져 나오는듯한 강한 자극을 느낄 때가 많다.
나는 그렇게 자극적이게 만들지는 않는다.
지인들이 우리 집에서 밥을 먹으면 늘 씀 씀 하다고 한다.

최소한의 간을 하고, 자극적이지 않게 한다.
혈압약을 드시는 시어머님과 신랑을 위해 되도록이면 싱겁게 만들려고 한다.

오늘 냉국은 소금보다 식초를 많이 사용했다.
예전 어느 방송에서 주워들은 이야기인데 식초가 들어가는 음식은 식초가 맛과 향이 강해서 조금 더 쓰게 되면 소금을 적게 사용해도 맛에 큰 영향이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는 식초를 먼저 넣고 소금으로 모자란 간을 맞춘다.

냉국은 의외로 소금이 많이 들어간다. 많이 넣었다 싶어도 간이 모자란다. 오늘 만든 냉국도 식초로 먼저 간을 하고 소금으로 모자란 간을 맞췄다. 역시 예상보다 소금이 적게 들어간다. 식초는 소금양을 줄일 수 있는 신의 한 수이기도 하다.






미역을 불리고 10초간 데친다. 비린맛을 잡기 위함이라지만 급할 때는 물에 불리고 바로 쓸 때도 있다. 별차이가 없다. 시간과 상황에 맞춰 융통성 있게 미역을 사용한다. 데친 미역에 국간장으로 미리 간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난 간장의 향이 나는 게 싫다. 냉국만큼은 깔끔하게 먹고 싶다.

뒤이어 오이와 양파를 채 썰고 고추도 얇게 썰어준다. 고추가 있고 없고의 차이도 있어서 기왕이면 넣어주려고 애쓴다. 정수기 찬물을 받는다. 같이 다 섞어서 식초(좀 많이)와 소금, 올리고당으로 간을 하고 깨소금과 참기름은 살짝만 떨어트려준다. 이게 끝이다. 끝이라 생각했다. 뭔가가 부족하고 뭔가가 아쉬웠다.

저녁은 그렇게 대충 한 그릇 먹고 아침이 돼서야 유레카를 외쳤다.

"다진 마늘!!!!!"
식성 좋고 냉국 좋아하는 딸에게 다진 마늘 푼 냉국을 내밀며 먹어보라 했다.
"어때? 이제 완벽한 거 같지?"
"응, 이제야 옛날맛이 나네, 맛있다."


올해 첫 미역오이냉국



음식에도 하나가 빠지니 이렇게 불협화음이 나는구나 싶었다.
마늘을 넣고 완전해졌다. 요리에도 철학이 들어있다는 게 분명 해지는 순간이었다.

냉국과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두렵진 않지만 3개월 이상 장기프로젝트가 될 것이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본다.

오늘도 오이를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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