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아침이라도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아침을 준비하고 뒷정리를 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7시다. 알람도 필요 없을 정도로 4시경이면 눈이 떠지고 아침식사도 5시 반부터 준비한다. 아이들도 6시면 배고프다는 말로 아침 인사를 대신한다. 배꼽시계는 틀리지도 않고 어찌 그리 칼 같은지 고맙기 그지없다.
오래간만에 잡초도 뽑고 화단정리도 하고 주말다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텃밭고랑을 만들고 난 신랑이 갑자기 나갈 채비를 하란다. 가볼 곳이 있다 하여 서둘러 채비를 하고 나섰다.
우리 가족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그 세월이 어느덧 16년 차가 됐다. 가족 5명이 방 3칸을 나눠서 지냈는데, 사춘기가 된 아이들이 자기 방을 원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집을 지을 뻔한 적이 있었다. 조립식이긴 했지만.
집 바로 옆에 조립식으로 집을 지으려 했던 적이 있었으나 시어머님께서 반대(절에서 여쭤보고 오시고는^^;;)하셔서 계획이 무산되었고, 그때를 놓치고 나니 집을 짓겠다는 마음이 서서히 잊혀갔다.
그때만 해도 신랑은 늘 객지생활을 했고, 어린아이들과 나는 방하나로 충분히 잘 지냈으니 방이 그렇게 간절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자 각자 방을 원하기 시작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3인 아들이 내년에 고등학교기숙사로 가게 되면 굳이 방이 필요하겠냐고 방이야기를 없던 일로 하려 했더니 기숙사에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이제는 정말 방이 필요하다. 지금 집을 짓는 건 무리임이 분명하고, 신랑과 함께 고심 끝에 결정한 게 이동식 집이었다.
오늘 아침, 신랑은 중고물품 거래하는 곳에서 찜해둔 집이 있다 했다.
우리는 머뭇거림 없이 이동식 집을 보기 위해 경남 함양으로 향했다. 도로 표지판은 분명 전라도였다. 이내 지리산 ic를 지나 경남 함양으로 진입했다. 지리산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도착지가 있었다.
냇가를 쉴 새 없이 따라가다 보니 내비게이션이 산 쪽을 가리켰다. 엄청난 언덕이었다.
차가 겨우 올라가는듯했다. rpm소리가 거친 숨소리 같았다. 차도 힘든 것 같았다. 거구 3명을 실었으니 힘들 수밖에 없지. 미안.
멀리보이는 지리산
올라갔더니 주인아저씨께서 알고 지낸 사이 마냥 엄청 반겨주셨다. 경치는 또 어찌나 좋던지, 산 중턱까지 올라오다 보니 풍경이 그리 좋을 수 없었다. 한옥목수이신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느라, 건너편 경치를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내어주신 커피를 서둘러 마시고 이동식 집 구경에 나섰다.
꼼꼼히 둘러보는데 생각보다 작았다. 참해 보여서 찜 했다 했었는데 작고 아담하긴 했다. 집이 돔형이기도 했고 지붕이 낮아 머리가 닿였다. 결국 실용적이지 못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냥 돌아왔다.
아들은 아지트 같은 느낌이 나던 그 집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가격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동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지게차, 트럭화물비용만 50만 원이고, 우리 집에 도착해서 내릴 때 또 추가금이 들어갈 상황이었다.
그럴 거면 새 컨테이너를 사는 게 더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내일 경주지역에서 새것을 알아보기로 했다.
오늘 이 걸음을 한건 이동식 집을 보는 게 가장 큰 목적이긴 했지만 지인이 근처에 계셔서 겸사겸사 움직인 것이었다.
지인을 만나 한 시간쯤 대화를 나누고 우린 또 바삐 움직였다. (오다가 남대구 ic에서 내려 중고차매매단지도 잠깐 들렀다-찜해둔 차를 보고 왔다. 어차피 지나는 길이라^^;;)
"우리 오늘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왔네. 운전만 실컷 하고." "여행 다녀왔다 생각하면 되지. 멋진 경치도 구경했고, 좋아하는 oo형님도, oo누나도 보고 왔잖아." "그건 그래"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더니 허탕 친 하루를 의미 있게 만들어버린 남편의 말을 바로 수긍하게 되었다.
멋진 경치도 보고 왔고, 지인도 만나 뵙고 왔고, 눈독 들이던 차도 보고 왔지 않은가?
말 한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다더니 오늘 남편이 던져준 말 한마디가 피곤함으로 절여져 있던 나를 물로 깨끗이 씻어내어 준 듯했다. 눈이 딱 떠졌다. 어쨌든 궁금한 건 다 해소되었고 보고 싶던 분들도 봤으니 된 거 아닌가.
조금 더 생각을 좋은 쪽으로, 긍정적으로 전환시키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면 좀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