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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May 09. 2023

대성통곡하게 만든 중1 딸내미의 편지

어버이날

어버이날이라고 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야 학교에서 시키니 자의든, 타의든 편지를 줄곧 써왔고 숙제를 제출하듯 편지를 건네받았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하다는 진부한 이야기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한 편지구경은 다했겠구나 싶었다.


어버이날을 사흘 앞둔 저녁시간.
딸내미는 자신이 쓴 편지라면 무심하게 건네주었다.
저녁상을 치우고 있던 터라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고, 편지는 나중에 읽겠다며 일단 거실 책장 위에 얹어두었다.

밥상정리를 하고, 남은 집안일을 하다 보니 딸이 건넨 편지는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외출준비에 한창인데 갑자기 눈에 들어온 딸의 편지.
편지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하루를 묵혀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컸다.

서둘러 봉투를 열고 눈으로 글을 읽어 내려갔다.





'히잉~~~ 왜 이래, 왜 나를 울리고 그래, 언제 이리 컸누~'

눈물, 콧물이 흘러 뒤범벅이 되었고, 외출하려고 했던 화장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는 많이 자라 있었다.
마냥 어리게만 생각했는데 누구보다 엄마를 아끼고 있었고, 감사하는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구나 싶어 울다가도 미소를 짓게 되곤 했다.

외출하고 돌아와, 어버이날마다 건네던 아이들의 편지를 찾았다. 어렵지 않게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부터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 아이들이 건네준 편지와 쪽지만큼은 박스에 넣어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울컥했다.

그때의 감격은 고사리손으로 만들고 색칠하며, 우리를 떠올리며 그렸다는 대견함이고, 이번 편지의 감격은 우리를 떠올렸다는 사실에, 애정과 진솔함이 더해졌다는 이유에서이다.

예전 감격의 수백 배, 수천 배로 내게 깊이 다가왔다.


편지 한 통에 다양한 감정들이 오고 갔고, 아이들을 키워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길고도 짧았으며 쉽다가도 어려웠다.

아직도 끝이 안 보이는 망망대해에  서있는 기분이지만 이제야 조금씩, 진정한 부모가 되어가고 있구나 싶기도 하다.
진부하다 여긴 감사의 인사들이 오늘만큼은 온전히 전해져 온다.


편지를 받았으니 엄마인 나도 답장을 해야 할 터.

전해주지 못할 답장을 글로 적어보려 한다.


"나도 고마워, 나를 엄마로 만들어줘서, 그리고 사랑해 줘서. 네가 고치라는 건 고칠 테니 너도 편지에 쓴 약속은 지켜주길 바라. 꼭! 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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