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어를 보자마자 흠칫 놀랐다. 마치 발가 벗겨진 것 같은 부끄러움이 발톱부터 타고 올라와 온몸을 뒤덮는 것만 같았다.
며칠 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이기도 했고, 무겁고 어려울 것만 같은 저 6글자를 글로 풀어내다 보면 조금이라도 견뎌내는데 도움이 되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든다.
중3인 아들, 중1인 딸이 있다. 작년부터 낌새가 보이더니 올해는 사춘기가 아주 극에 달한 느낌이다. 말 한마디 건넸다가 으르렁대기 일쑤고, 말끝마다 칼날이 달려있는 것처럼 아프다. 어느 날은 곱디고운 천사 같다가도, 또 어느 날은 악하다. 호르몬의 장난이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다.
며칠 전 아침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일어난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아침을 먹으라며 불렀다. 준비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다. 초스피드로 나온 아이들은 준비도 안된 밥상에 불러냈다며 짜증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렸다 먹음 될 것을, 그리 화낼 일인가?' 목까지 차오르는 말과 화를 꿀꺽 삼키고, 준비를 이어갔다.
두 아이는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눈을 뜨자마자 온갖 짜증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뿔이 달린 말들은 과녁이 된 나에게 마구 와서 꽂혔다.
또 참았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밥상에서 화를 내는 건 아니다 싶었다.
그날 오후. 하교를 한 아이들은 더운 날씨 탓인지, 호르몬의 이끌림 때문인지 여전히 날카로웠다. '사춘기가 벼슬이야?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고!!'
내 분노의 게이지도 차츰차츰 차오르기 시작했다. 시한폭탄에 불이 붙은 것처럼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화를 건네는데 말대꾸가 넘어왔다. 지금 생각해 보며 별것 아니었던 것 같다. 왜 화가 치밀었는지, 어느 포인트에서 화가 폭발한 건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어찌 됐든 이번엔 내 차례였다. "내가 너희 감정쓰레기통이냐? 왜 나를 못 잡아먹어서 난리냐?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데? 너희 너무 한 거 아니야? 왜 나에게 아픈 말을 퍼부어대는 건데? 나에게 그래도 되는 거냐? 도대체 왜? 왜 그러는데"
래퍼가 된 것처럼 속사포로 아이들에게 내가 느낀 감정을 쏟아냈다. 아니 쏟아부었다. 너희도 당해보라는 식으로 마구 쏘아댔다.
한 번의 버럭으로 아이들은 꿀멍은 벙어리, 세상 조용하고 순한 양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적당히 좀 하지, 꼭 난리를 쳐야 된다니까'
본인도 본인 컨트롤이 안된다는 걸 알지만 엄마는 감정쓰레기통이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많이 다칠 것 같았다. 당연히 차분한 대화가 더 효율적이고 진심이 잘 전달이 되겠지만 그 당시는 나조차도 내가 어찌하지 못했다. 어렵고 힘들었다. '어릴 적 나도 이랬었나? 나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내 생각의 끝은 엄마에게로 가 있었다.
엄마는 나의 사춘기를 나처럼 받지 않으셨다.
다정히 품어주시고 늘 긍정을 심어주시던 엄마. '나는 왜 엄마처럼 하지 못할까? 나는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건가?'
한 번의 버럭이 땅속까지 나를 끌고 내려갔다. 시간이 가고, 아이들이 커갈수록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가 자꾸만 무겁게 느껴진다.
멋모르고 열심히, 잘 키워보리라던 열정 가득한 엄마에서 화조차 조절 못하는 신세가 되다 보니 작디작은 엄마가 된 것 같다.
'사춘기는 언제쯤 끝이 날까?끝은 있겠지? 분명 있겠지? '라며 나에게 위로를 건네본다.
하나의 언덕을 넘은 것 같은데 눈앞에 더 높은 산이 있을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오지만, 크디큰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며 용기를 건네본다.
'할 수 있다. 그럼~ 할 수 있지. 물론! 그러려니 해보자. 한번 참을 거 두 번 참아보자. 호르몬의 장난질 때문인데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말자. 인정해 주자. 받아들이자. 그게 지금의 최선이다. 엄마의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조금만 힘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