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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May 10. 2023

엄마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감정쓰레기통

어제의 영감제시어였다.

제시어를 보자마자 흠칫 놀랐다. 마치 발가 벗겨진 것 같은 부끄러움이 발톱부터 타고 올라와 온몸을 뒤덮는 것만 같았다.

며칠 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이기도 했고, 무겁고 어려울 것만 같은 저 6글자를 글로 풀어내다 보면 조금이라도 견뎌내는데 도움이 되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다.





중3인 아들, 중1인 딸이 있다.
작년부터 낌새가 보이더니 올해는 사춘기가 아주 극에 달한 느낌이다.
말 한마디 건넸다가 으르렁대기 일쑤고, 말끝마다 칼날이 달려있는 것처럼 아프다.
어느 날은 곱디고운 천사 같다가도, 또 어느 날은 악하다.
호르몬의 장난이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다.


며칠 전 아침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어난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아침을 먹으라며 불렀다.
준비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다.
초스피드로 나온 아이들은 준비도 안된 밥상에 불러냈다며 짜증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렸다 먹음 될 것을, 그리 화낼 일인가?'
목까지 차오르는 말과 화를 꿀꺽 삼키고, 준비를 이어갔다.

두 아이는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눈을 뜨자마자 온갖 짜증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뿔이 달린 말들은 과녁이 된 나에게 마구 와서 꽂혔다.

또 참았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밥상에서 화를 내는 건 아니다 싶었다.






그날 오후.
하교를 한 아이들은 더운 날씨 탓인지, 호르몬의 이끌림 때문인지 여전히 날카로웠다.
'사춘기가 벼슬이야?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고!!'

 분노의 게이지도 차츰차츰 차오르기 시작했다.
시한폭탄에 불이 붙은 것처럼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화를 건네는데 말대꾸가 넘어왔다.
지금 생각해 보며 별것 아니었던 것 같다. 왜 화가 치밀었는지, 어느 포인트에서 화가 폭발한 건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어찌 됐든 이번엔 내 차례였다.
"내가 너희 감정쓰레기통이냐? 왜 나를 못 잡아먹어서 난리냐?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데? 너희 너무 한 거 아니야? 왜 나에게 아픈 말을 퍼부어대는 건데? 나에게 그래도 되는 거냐? 도대체 왜? 왜 그러는데"

래퍼가 된 것처럼 속사포로 아이들에게 내가 느낀 감정을 쏟아냈다. 아니 쏟아부었다.
너희도 당해보라는 식으로 마구 쏘아댔다.

한 번의 버럭으로 아이들은 꿀멍은 벙어리, 세상 조용하고 순한 양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적당히 좀 하지, 꼭 난리를 쳐야 된다니까'

본인도 본인 컨트롤이 안된다는 걸 알지만 엄마는 감정쓰레기통이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많이 다칠 것 같았다. 당연히 차분한 대화가 더 효율적이고 진심이 잘 전달이 겠지만 그 당시는 나조차도 내가 어찌하지 못했다.
어렵고 힘들었다.
'어릴 적 나도 이랬었나? 나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내 생각의 끝은 엄마에게로 가 있었다.

엄마는 나의 사춘기를 나처럼 받지 않으셨다.

다정히 품어주시고 늘 긍정을 심어주시던 엄마.
'나는 왜 엄마처럼 지 못할까? 나는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건가?'

한 번의 버럭이 땅속까지 나를 끌고 내려갔다.
시간이 가고, 아이들이 커갈수록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가 자꾸만 무겁게 느껴진다.

멋모르고 열심히, 잘 키워보리라던 열정 가득한 엄마에서 화조차 조절 못하는 신세가 되다 보니 작디작은 엄마가 된 것 같다.

'사춘기는 언제쯤 끝이 날까? 끝은 있겠지? 분명 있겠지? '라며 나에게 위로를 건네본다.

하나의 언덕을 넘은 것 같은데 눈앞에 더 높은 산이 있을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오지만, 크디큰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며 용기를 건네본다.

'할 수 있다. 그럼~ 할 수 있지. 물론! 그러려니 해보자. 한번 참을 거 두 번 참아보자. 호르몬의 장난질 때문인데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말자. 인정해 주자. 받아들이자. 그게 지금의 최선이다. 엄마의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조금만 힘내보자!!'

오늘도 나는 하염없이 나를 다독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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