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지병 있어요?" "아니요. 병도 없고 먹는 약도, 아무것도 없어요." "이상하네. 지금 눈 안 보이는 것은 급성포도막염이에요. 보통 지병 있는 분들이 많이 생기는 병인데, 병도 없고, 먹는 약도 없고 신기하네요.일단 안약 2개 줄 테니 약국에서 넣으라는 대로 넣고 며칠 있다 또 봐요. 이 안약 넣으면 안압이 올라가 눈두덩이가 아프거나 눈이 빠질 것같이 아플 수 있으니 일단 사흘 넣고 경과를 보자고요."
'급성포도막염? 이건 또 뭐래~'
안약을 받자마자 선채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양쪽눈에 한 방울씩 떨어뜨려본다. 시원하지도 않고, 눈에 가려진 안개는 여전히 그대로다.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로 시선을 모아도 좀 더 잘 보이거나 선명해지지는 않는다. 온종일을 김이 잔뜩 서린 목욕탕에서 활보하는 느낌으로보내야 했다.
'안 보이는 분들은 어찌 지내실까?' 보는 것, 듣는 것, 숨 쉬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겼던 어제까지의 내가 부끄러웠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며 늘 노래하던 내가 아니던가. 한없이 부끄럽고 작아졌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 점점 눈앞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밝아지는 시선에 감사한 마음도 잠시, 눈이 뻑뻑하고 부은듯한 느낌, 눈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오전근무만 하던 목요일, 안과를 다시 찾았다. "예상처럼 안압이 올라갔네요. 안약 하나 더 줄 테니 넣으세요."
받아 든 안약은 녹내장에 쓰는 안약이었다. 그렇게 며칠뒤, 나의 눈은 환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욕심쟁이였다. 3시 반, 4시에 기상해서 30분~45분간 스텝퍼를 지르밟으며 독서를 했고 6시까지 바느질을 했다. 일하던 병원의 동선이 길어 하루 2만 보는 그냥 걸어졌고(환자분이 많은 것에 비해 간호사는 단 2명이 전부였다. 바빴다.) 점심시간은 1시간 반이 주어지는데 밥을 먹은 뒤 진료시간 전까지 매일 걸었다. 비가 와도 걸었다. 퇴근 후 집안일, 육아를 하고 나면 녹초가 되어 나도 모르게 잠드는 게 일수였다.
아마도 그 이유일 꺼라 짐작한다.
내 몸을 혹사시켰던것이다.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힘들다고 아우성을 쳤다. 눈이 그 지경이 되고 나서야 기상시간을 30분 정도 늦췄고 스텝퍼도 30분 이상 하지 않았다. 점심시간도 30분만 걷고 남는 시간을 독서로 대체했다. 그러다 보니 옥죄던 마음이 느슨해지고 여유마저 느껴졌다. 악착같이 살아내려던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즐기는 게 무언인지, 그게 무슨 맛인지 감을 잡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나를 왜 그리 혹사시킨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렇게 사는 게, 미친 듯이 열심히 사는 게 정답인 줄 알고 살았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글을 쓰며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내 마음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하는 일도 융통성 있게 진행한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과하면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는 선조들의 지혜를 이제야 깨닫는다.
글을 쓸 수 있는 손, 아름다운 풍경을 담을 수 있는 눈,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입과 치아, 호흡할 수 있는 폐, 평생 쉬지 않는 심장등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 중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프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진정 나를 위한다는 게 무엇인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은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었음을깨닫는다.
주어지는 모든 것들에게, 허락된 모든 것들에게 감사하는 오늘이, 내일이, 매일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