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추억일 뿐이다

버스매연의 기억

by 박현주

보문호수를 거닐어보려고 차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버스매연이 사정없이 들이닥쳤다.
메스껍기도 했지만 쓰린 추억이, 가슴 아픈 추억이 되살아나 그게 더 힘들었다.






중학생 시절, 전학을 가게 돼서 버스를 왕복 4시간 동안 타야 할 상황에 놓였다.
그렇게 하기에 너무 힘이 들었고 할 수 없이 군인이던 아버지는 투잡을 뛰시게 됐다. 명의는 엄마명의였고 일은 아빠가 하신 걸로 안다.


컴퓨터가게를 하셨다. 고쳐도 주고, 조립컴퓨터를 만들어 파시기도 했다. 그 모든 게 퇴근 후의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의 무게가 가볍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컴퓨터재료를 넣는 책장뒤로 작은 방한칸을 만들어주셔서 그곳에서 나와 여동생은 자취방으로 쓰게 되었다.
가게가 하천 근처여서 그런지 자다 보면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출몰하기 일쑤였다. 다다다닥 걸어가는 바퀴벌레의 발걸음 소리는 아직까지도 내 귓가에 선명하다.
떠올리기조차 싫을 만큼 소름이 끼친다.


2년 정도가 흐르고 다시 컴퓨터가게를 옮겼다.
젊은 삼촌 2분과 아버지는 동업을 하신다 했다.
이번 컴퓨터가게는 포항 종합버스터미널 입구에 있는 식당가 2층이었다.
예전가게와 다름없이 여동생과 둘이 앉아 밥을 먹고 잘 수 있게 나무로 방처럼 만들어주셨다.

얼마나 흘렀을까? 아마도 반년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매연이 얼마나 나쁜지 알게 됐다.

아침, 저녁으로 수십대의 버스매연을 맡고 살다 보니 위와 장이 제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동생과 나는 교대로 화장실을 오고 갔고 밥을 안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우리는 강제 금식에 들어갔다.
먹으면 다 게웠다. 속에서 음식을 안 받아줬다.
동생과 아픔을 공유하며 겉으론 웃었지만 속으론 눈물을 삼켰다.


그 시절엔 원망이란 것도 없었다.
이게 최선이었다 생각했고 그렇게라도 해주시는 아빠께 감사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비가 많이 오던 날이 있었다.
대잠못이라는 큰 저수지가 터지는 일이 발생했다. 도로가 잠기고 사람들 다리까지 잠기는 큰 사건이었다.
다행히 2층 건물에 있던 우리는 창문밖을 구경할 수 있는 여유도 있었다.
물이 잠긴 도로를 건너 편의점에 가는 사람을 보고 대단하다고도 이야기했고, 물살에 휩쓸릴까 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쳐다보기도 했다. 참 무서운 날이었다.


며칠 뒤 들은 이야기로 예전 컴퓨터가게가 천장까지 물이 차서 거기 있었으면 큰일 날뻔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아빠도 못 나오셨던 날이었는데 그날, 예전가게에 있었더라면? 생각하기 싫을 만큼 끔찍했을 것 같다.
정말 감사했다. 매연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다 되어버렸지만 마음만은 편안했다.

생각보다 장사가 안 돼서 그랬던지 얼마못가 아빠는 동업을 접으셨고 그 뒤에 제대를 하신 기억이 난다.
나는 고3이 되면서 취업을 나갔고 동생은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도 한 번씩 그때를 회상한다. 엄마가 참 많이 미안해하신다. 넉넉했다면 방을 구해줬을 거라며 당신을 탓하지만 우리는 불만불평 없이 잘 지냈다.
괜찮았으니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늘 말씀드리지만 잘 안되시는가 보다.

매연을 맡고 추억이 되살아나 보문호수를 걷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것도 잠시, 물가에 보이는 거북이, 잉어, 가물치들을 보고, 찾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예전의 기억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이래서 걷는 건가 싶었다.
머리가 비워지니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추억은 추억일 뿐이다. 그렇다 여기며 살면 된다.

보문호반길 & 걷다가 만난 생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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