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좀 하고 사는 게 어떻겠니?

걷기와 사유

by 박현주

바람이 매섭다. 날씨가 풀린 듯 하지만 공주(밖에서 키우는 개의 이름)의 물그릇이 냉동실에서 방금 꺼낸 것처럼 땅땅하게 얼어있는 걸 보니 아직은 겨울임이 확실하다.


나의 아침루틴은 아이들을 차로 등교시켜주고 집으로 와 주차를 하자마자 동네를 걷는 것이다. 글쓰기 수업 때 코칭해 주신 '사유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공복에 하는 운동이 체지방 줄이는데 더 효과적이라 하는 소리를 들어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달랐다. 신랑이 쉬어서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신랑이 쉬는 날이면 바늘과 실처럼 우린 늘 함께한다.


우리가 같이 걷게 되는 날이면 동네가 아닌 다른 곳을 찾는다. 그곳은 바로 '보문호반길'이다. 보문호수를 껴안고 있는 둘레길인데 7킬로 정도거리이다. 빠른 걸음으로 두어 번 쉬면서 걸으면 한 시간 반정도 걸리는 코스다.

경주 보문호수

보문호반길은 벚꽃나무가 주로 심어져 있고 은행나무와 버드나무도 간간히 있다. 벚꽃나무 덕분이겠지만 유난히 봄이 더 아름다운 곳이다.


오랜만에 왔더니 가지가 앙상했다. 언제 붉은 옷들은 다 벗어던진 건지 나무도 애법 추워 보였다.

신랑과 걷기를 하게 되면서부터 대화를 많이 하게 됐다. 주로 아이들 이야기, 일 이야기, 주변 이야기들로 시간을 꽉 채우며 걷지만 오늘은 차가운 바람이 무섭기도 했고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 옷매무새도 단단히 해놓았기에 대화보다는 발걸음에 집중했다.

함께 걷지만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새해 목표도 되새겨보고, 좋은 엄마의 자질도 따져봤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한 방법도 모색해 봤다. 올해는 무엇보다 속임 없는, 진실된 모습의 나를 만나보고 싶어 졌다.

한번 걷게 되니 계속 걸어야겠다는 의지가 올라왔다. 걸으면서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니 정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매일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해야 되고, 일도 해야 하는 바쁜 일상이지만 나를 위한 시간을 내는 것에 인색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광호 님의 '아름다운 사유'라는 책을 보면 사유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나는 타인을 이해하고 싶고 세계를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간절히 나를 이해하고 싶었다. 나는 자주 후회했고 금방 실망했다. 즐거움 앞에선 쉽게 흐트러졌고 슬픔 뒤엔 곧잘 무너졌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때마다 반성한다며 너저분한 감정을 뒤적거리는 피곤한 일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알 수 없는 내 행동과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을 분석하고 정돈해야 했다. ‘나를 공부함으로 내일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다음엔 더 잘 해낼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어쩌면 나를 이해하는 것은 ‘나’라는 인간을 조금 더 알뜰하고 가치 있게 활용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p.11)
지금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아는 것. 과거에 얼마나 많이 했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현재까지 꾸준히 했기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왠지 좀 겸손한 섹시미가 있다.(p.57)

글쓰기수업을 받기 전까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없다. 그랬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정말 생각 없이 살았다.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열심히 달리기만 했다.


이제는 사유(思惟)를 통해 이 세상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진정한 나로 살아가게 된다면 세상살이에 조금은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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