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좋아할 테다

그냥의 의미

by 박현주

"여보세요~"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 오고 해서
오랜만에 빗속을 걸으니 옛 생각도 나데..."

오늘 별별챌린지 3일 차 제시어를 보자마자 이 노래가 내 뇌리를 스친다. 임종환 님의 '그냥 걸었어'라는 노래다.
대충 나이가 유추될 것 같지만 부끄러워도 할 수 없다. 하하
살다 보니 '그냥'이란 말은 쓰기 좋고 편하게 쓰이는 언어라 별다른 생각 없이 남발했던 단어다.


그냥이라는 부사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의미를 안 두고 별 뜻 없이 사용했었는데 나름 역할이 있는 언어였다.

1.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그냥 놔두다.
2. 그런 모양으로 줄곧.
-하루 종일 그냥 울고만 있으면 어떻게 하니?
3.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
-그냥 주는 거니?

계란프라이에 소금한꼬집 뿌려주는 것처럼 밋밋할 수 있는 글들을 맛깔나게 해주는 언어였다.
의미도 다양하며, 부사의 역량을 톡톡히 해내는 단어였다.

나는 '그냥'이라는 단어를 정성 없는 단어라 치부했다. 그런 단어가 그다지 반갑지도, 좋지도 않았다.

'한 가지만 의미하는 단어도 아닌데 왜 달갑지 않았을까? 그래도 쓸모 있는 단어인 걸까?'

살아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내 잣대로 생각하고 결론 내는 일들이 많았다. 그 작은 단어까지도 내 맘대로 생각하고 정의해대는 것 보면 나는 아직도 꽉 막힌 사람인가 보다.
나를 조금이라도 한편에 접어두고 조금은 다르게, 조금은 뒤집어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겠다.
아직도 커가는 중이라 배울게 많다. 어른이라서 다 옳은 것도 아니더라. 그중에 한 명이 나라는 건 안 비밀.
굳어진 고정관념과 막힌 시각을 뻥 뚫어서 사이다 같은 청량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냥'이라는 단어하나가 나를 되돌아보게 해 주는 것 보니 결코 쓸모없는 단어는 아니구나.
그냥을 좀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봐줘야겠다.

이승희 님의 시집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에 실린 '그냥'이라는 시가 있다. 내가 느낀 '그냥'이 얼음이었다면 이 시에서는 묘한 따뜻함이 있다. 역시 내가 틀렸구나.



그냥
그냥이라는 말속에는 진짜로 그냥이 산다. 아니면 그냥이라는 말로 덮어두고픈 온갖 이유들이 한순간 잠들어 있다. 그것들 중 일부는 잠을 털고 일어나거나 아니면 영원히 그 잠 속에서 생을 마쳐 갈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그냥 속에는 그냥이 산다는 말이 맞다. 그냥의 집은 참 쓸쓸하겠다. 그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입술처럼 그렇게.
그냥이라는 말속에는 진짜로 그냥이 산다. 깊은 산그림자 같은, 속을 알 수 없는 어둔 강물 혹은 그 강물 위를 떠가는 나뭇잎사귀 같은 것들이 다 그냥이다. 그래서 난 그냥이 좋다. 그냥 그것들이 좋다. 그냥이라고 말하는 그 마음들의 물살이 가슴에 닿는 느낌이 좋다. 그냥 속에 살아가는 당신을 만나는 일처럼.


시인의 글에 마음이 일렁인다.

한발 물러나 바라보니 글 쓰는 지금도, 사유하며 걷는 나만의 시간도, 아이와 다퉈 고구마 천 개를 먹은 답답함이 밀려올 때도 모두가 그냥 좋다. 그냥 좋아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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