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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Jan 03. 2023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그와의 만남

벌써 16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니, 힘든 일은 쉬이 잊히지 않는 게 분명하다.


벚꽃봉우리가 팝콘처럼 붙어있던 이른 봄, 17시간의 사투 끝에 그를 만났다. 눈앞이 노래져야 만날 수 있다던데 내 시선엔 오로지 하얀색 천장만 들어올 뿐이었다.
'노란색은 무슨, 무슨 색인지도 분간도 안 가던데, 덜 아팠던 게지.'

그를 만나기 예정된 시간이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만나줄 기미를 안보였다.
"방 빼기가 그렇게 싫으니? 방이 그렇게 좋아?"
듣고는 있는 건지, 안들은척 하는 건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더는 늦어지면 안 된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유도분만을 예약했다.
예약하고 이틀 후 이슬(피)이 보였다. 피가 비친다는 건 그를 조만간 만나게 될 거라는 무언의 예고였다.
 저녁 9시경 바로 병원으로 향했고 이슬 본 사실을 알렸더니 일단 자보고 내일 오란다.
병원으로 향했던 그 순간부터 무서움이 내 안에 자리 잡은 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내일 유도분만 잡아놨는데요."
"그래요? 그럼 들어오세요"

'다행이다'를 주무처럼 외우며 가족분만실로 들어갔다.
넓은 침대하나, 보호자용 소파가 전부였지만 넓고 깨끗했다.
옷을  바꿔 입고 나니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작인 건가?'
'내가 엄마가 된다고?'

이때만 해도 금세 그를 만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야무진 착각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진통이라고 하는 무서운 녀석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고통의 서막이 열렸다. 고통의 강도도 점차 세졌다.
짐볼에 몸을 맡겨도 보고, 침대를 지지대삼아 이리 뒹굴, 저리 뒹굴도 해봤지만 진통이 걸리면 정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가출해 버린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감정도 없는 무아지경 속으로 빠져버린다.

출산 후 알게 된 무통주사의 존재, 왜! 어느 누구도 언급이 없었던 건지 야속하기까지 했다.
출산 전까지 맘카페의 파워를 몰랐다. 출산 후 검색해 본 맘카페는 또 다른 큰 세상이었다. 검색이라도 제대로 해볼걸,  무통주사는 신세계라던데 나는 신세계는커녕 지옥문 앞까지  다녀왔다. 


'넌... 누구냐... 내속에서 나온 거 맞냐?'
입체초음파랑 판연히 다른 첫인상에 당황했다.
'하하하... 코 보니 아빠아들 맞네.'
올망졸망한 낮은 코, 영락없는 아빠였다.
"아가야~엄마야"
6글자를 외치고서야 한시름 놓았다.
크림치즈를 발라놓은 건지, 콜드크림 한통을 다 쏟아부은 건지, 태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예상과는 다르게 생긴 아이가 눈앞에 있었고 내 아이였지만 못났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엄마 맞니?'

내가 출산한 병원은 모자동실을 운영했다. 신생아실에서 단체합숙을 하는 게 아닌 1인 1실, 엄마옆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는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를 간단한 검사와 목욕 후에 데려다주겠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방으로 옮겨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가 왔다. 어? 태어난 몰골 그대로였다.
그날 그 시간 때 출산한 아이가 많아서 기다려야 된다고 방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찬찬히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아까랑 또 다르군. 조금 봐줄 만하네. 그런데 태지를 빨리 닦아주면 좋겠구먼.'
허연 태지는 내 눈에 가시 같았다.

아이가 목욕재계를 하고 내 품에 안겼다.

"반가워"

아이에게 제대로 인사를 건넸다.
무슨 일인지 아까와는 다르게 이뻐 보였다.
'이 작은 생명체가 나의 아이라고? 나 이제 정말 엄마가 된 건가?'
아이를 제대로 안아본 그 순간은 잊히지가 않는다.
실감 나지 않는 행복이었다. 아니 행복이란 단어로도 부족하다.
세상이 내 손안에 있는 기분이랄까? 그 누구도 부러울 게 없을 만큼 행복하고 소중했다.
못생겼다고 생각한 것이 미안하리만치 예뻐 보였다. 건강하게 태어나 내 옆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작디작고 소중했던 그 아이는 어느새 중3이 되었다.
키도 나보다 크고 내가 기댈 수 있을 만큼 듬직해졌다.
부족한 엄마이다 보니 부딪힐 때도, 서운하게 할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엄마가 좋다는 아이를 보면 세상 살아갈 힘이 난다.
아이를 안았던 그 순간도,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나에겐 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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