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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Jan 07. 2023

휴무 없는 아빠의 비애

졸업식에 가다

초등학생인 둘째 딸아이의 졸업식에 다녀왔다. 중학생 아들이 있지만  초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건 처음이었다. 중학생아들은 코로나로 인해 유튜브를 통한 방구석 졸업식을 했다. 그 당시에는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실시간방송도 못 보고 녹화영상으로 아들의 졸업식을 대면했다.
어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머리로는 이해하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야속하고 애석했다.
 
아들이 졸업한 지 2년 후, 오늘은 달랐다.
많은 학부모들은 물론 내빈석도 만원이었다.
떨어져 있는 좌석, 마스크로 가려져 눈만 빼꼼히 내놓은 상태의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졸업식과는 너무도 다른 낯선 풍경이 계속 연출되었다.
이 좋은 순간들이 마스크로 다 가려져 평생 남을 사진 속에서 조차도 모두가 눈만 내놓고 있으니 섭섭하고 서운함에 속이 상했다.


졸업장을 받는 아이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해준 것도 없는데 벌써 이만큼 자랐구나'

딸이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 은하수처럼 작은 별들이 그려진 핑크색 점퍼에 빨간색 무당벌레부츠를 신고와 이름 붙어진 첫 책상에 앉아서 사진 찍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의 시간이 흘렀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조금은 부정하고 싶기도 하다. 아직도 아기 같은데.

담임선생님께서 졸업생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는 순서도 있었다.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졸업생이 된듯한 기분에  눈물이 났다. 영상을 찍으며  흐르는 눈물을 모른 체했다.

오래간만에 큰 행사이자 외출이라 눈에 힘을 준다고 아이라이너에 마스카라까지 했는데 조금만 더 길게 이야기하셨더라면 우리 가족사진에는 판다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졸업식이 끝나고 선생님과 졸업생들이 다 함께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들의 눈이 하나둘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우리 딸 역시 눈가로 흐른 눈물자국이 역력히 보였다. 마스크로 가려져 있지만 발그레 상기된 볼도 얼핏 보였다. 대성통곡하는 아이들 사이로 선생님의 눈물도 보았다.
'진정으로 아껴주고 사랑해 주셨구나. 감사합니다'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들 틈에 끼어 감사하다는 인사밖에 전하지 못했지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알아주실 거라 믿고 발길을 돌렸다.

마지막인사를 하고 온 아이는 손끝만 톡 하고 건드려도 울음보가 터질 모양을 하고 있었다. 울음을 머금고 있는 딸아이가 측은하기도 했고 섭섭했을 마음을 조금은 같이해주고파 점심외식은 건너 띄기로 했다.
퉁퉁 부은 눈, 상기된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려왔다.

졸업식날은 짜장면인데, 하는 수없이 짜장라면을 대령했다. 아빠는 비빔면, 아들은 떡라면, 딸과 나는 짜장라면으로 합의를 봤다. 웬걸, 짜장라면은 2 봉지를 끓였고 고춧가루 뿌려 한 젓가락 먹고 나니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짜장라면. 텅 빈 냄비바닥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슬픔이 다 가셨나 보군. 외식 가기 싫다더니'
어쨌거나 잘 먹어서 이쁜 딸이다.


점심을 약하게 먹기도 했고, 할머니도 일찍 퇴근하시는 날이라서 함께 고기외식을 하러 가기로 했다.
외식하고 오는 길, 반주로 소주 몇 잔 걸친 신랑의 복잡 미묘한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신랑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학교행사에 참여한 게 오늘이 처음이었다. 물론 일 때문이었지만 그동안 못 와봤던 게 내심 속상했었던 모양이다.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지, 마음대로 월차도 쓸 수 없는 직업이라 더 그랬을지도. 공식적으로 맘 편히 쉴 수 있는 날은 눈이나 비가 오는 날, 약속적으로 휴무가  잡힌 날, 그런 일은 잘 없지만 간혹 자재부족으로 쉬는 날이 전부다.
만약 일이 생겨 신랑이 쉬기라도 하게 되면 같이 일하는 팀 전부가 쉬어야 되는 일이 발생하니 마음과는 다르게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세월이 어느새 15년이나 흘렀다.
'말은 안 했지만 얼마나 와보고 싶었을까?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자식들의 모습을 눈앞에서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만감이 교차한다는 걸 말과 표정 속에서 읽을 수 있었다.
"졸업축하해, 이제 다 컸네, 언제 이만큼 컸나..."
말끝을 흐리는 신랑의 애잔한 마음이 고요한데도 전해져 왔다.
일 때문에 아이들이 커가는 것도 제대로 못 보고, 어쩌면 소외된 느낌으로 외롭지는 않았을까 염려된 적도 있었다. 그 염려가 사실처럼 다가오는 오늘이었다.


요 며칠사이에 사춘기가  왔다는 걸 확신할 만큼 급작스럽게 변한 딸의 행동에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뽀뽀도 안 해주고 포옹마저 거부하니 딸의 사춘기를 피부로 느끼게 된 신랑이 조금은 안쓰럽고 외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뽀뽀도 안 해주고 방에서 나가달란다." 
말투에 섭섭함이 잔뜩 묻어있다. 어쩌겠나! 받아들여야지. 이것 또한 성장하는 과정일 텐데.

오늘은 우리 아이 성장스토리의 한 페이지를 같이 메꿨다.
나에겐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사건이다.

큰 감동이고 엄청난 행복이었다.
학예회, 입학식, 부모참관수업등 아이를 키우며 부모가 개입되는 모든 행사에는 여태껏 늘 혼자였다. 오늘은 혼자가 아닌 함께여서 외롭지 않았고 즐거웠으며 훈훈했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로, 어떤 이야기로 우리의 스토리를 만들어갈지  모르겠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라고 기도하게 된다.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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