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과의 대화는 버릴 게 없다

by 박현주

2년 정도 되었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가 안 본 지 그렇게 오래됐어요?"
가늠이 안 되는 세월의 속도에 놀랍기도, 야속하기도 했다.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도 못 보고 지냈다니, 그것도 한 동네에서.
연락도 자주 못해 미안해진 마음이 자꾸만 내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오랜만에 뵈었지만 엊그제 본듯한 편안함과 반가움이 나를 반겼다.






두 분의 언니와 만나 아귀찜집으로 향했다.
복어전문점이었는데 아귀찜이 맛있다고 데리고 가주셨다.
"어~뭐지? 뭔가 쓰여있는데?"

문 입구에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3명 모두 안내문 앞에 서서 눈길을 주었다.
아구가 없다는 아쉬운 문구였다.
그럼에도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귀찜을 못 먹는 아쉬움을 복어찜으로 대신했다.
나는 복어찜이 처음이라 설레었는데 언니들의 표정은 이미 먹어본 듯한 얼굴이었다.
아귀찜이 촉촉하고 부드럽다면 복어찜은 담백하고 텁텁한 맛이 있었다. 껍질은 쫄깃했다. 다양한 식감에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먹었다. 중간중간 가족들의 안부도 물어주시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복어찜



쉴 새 없이 먹고 배를 두드리며 나왔다.
언니들을 만난 것도 반가웠지만 복어찜도 처음이라 신이 나 있었다. 배까지 부르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언니 한분이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커피도 한잔 하자며 보문 쪽으로 데리고 가주셨다.
밥도 사주시고 커피까지 사주셨다.
계산하려는 나를 막아서시며 얼굴 보여줬으니 그걸로 됐다고 한사코 나를 막고서 계산을 하신다.
그리 해주시는 이야기도 감동적이고 오늘 제대로 대접받는 것 같은 마음에 감사하기도 했다.

커피숍에 와서는 거의 80~90%를 듣기만 했다.
언니들의 아이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까지 했기에 우리 아이들과의 갭은 있지만 육아의 기본이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듣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여러모로 유익했다.

사춘기 때의 상황들, 아이들에게도 사과할 줄 아는 부모의 모습, 성인이 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 아이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각, 내려놓기의 예시등 아이들을 키우는데 참고해야 될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언니들은 이야기만 듣느라 재미도 없고 심심했는 거 아니냐고 하셨지만 나는 아니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부분은 바꿔야겠다 생각했고 미안해하는 마음을 갖기 전에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잘못이 있다면 사과하는 용기를 내는 것도 필요하고, 대화를 하며 풀어나가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며 언니들이 당부하셨다.

신랑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참고 참아 가슴에 쌓아두고 살았다는 언니가 내년이면 결혼 30주년이 된다고 하셨다. 30년 동안 신랑과의 소통이 없다가 아이들이 출가를 하게 되고 이제 소통이란 걸 해보려 하니 무척 어렵다고 하시며 젊을 때 부부간의 소통, 공유는 필요하다며 강조하셨다.

듣는 내내 메모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함께 운동도 했던 사이였고 서로의 가정사를 대충 알기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내어 주셨다.
나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칭찬만 해주시는 언니들 덕분에 자존감도 자라난듯했다.
매일 봐야겠다며 장난 같은 진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인연에 감사했다.
같이 배드민턴을 치던 인연이기도 하지만, 한분은 예전 내가 일했던 병원의 사모님이었다.
그 병원을 그만두고 나니 사모님 말고 앞으로는 언니라고 부르라며 부탁을 하셨다.
한 번씩 사모님이라는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긴 하지만 언니라는 말을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쉽지는 않지만 호칭 덕분인지 조금은 더 가깝고 편해진 건 사실이다.

맛난 음식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며 5시간을 꽉꽉 채웠다.
무엇하나 버릴 게 없는 시간이었다.
감동과 후회, 감사와 인정, 응원과 위로를 받은 선물 같은 순간순간이었다.

가까운 시일로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이별을 했지만 오늘 받은 감동으로 한동안 힘을 내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선물 같은 인연, 선물 같은 하루가 내게는 보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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