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소문도 없이 가을은 어느덧 곁으로 왔다.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차가움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걸 보니.
"우리 오랜만에 저녁 산책 갈까? 밥 먹고 갈래?"
신랑이 함께 걷고 싶다는 마음을 비췄다. 온종일 끙끙대고 있었지만 누워있는 게 능사는 아니란 생각에 벌떡 일어나 긴팔체육복을 주섬주섬 꺼내 입었다. 웬일로 아이들도 함께 하겠다며 대답하더니 분주해진다. "긴팔로 입어, 밤 되면 춥데이~"
옷을 갈아입고 손전등을 챙기고 나서야 길을 나섰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습한 공기에 여름이 후딱 지나가길 바랐는데 그 공기는 온데간데가 없고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 얼마나 걸었을까? 마을회관 앞 커브길로 들어서는데 아이들이 소리를 지른다. "악~~ 뱀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뱀이라니! 작지만 강해 보이는 색깔이 뒷걸음질 치게 했다. 이유도 모른 채 사진을 찍어댄다. 뱀에겐 미안하지만 작든 크든 소름끼친다. . 까칠하던 중1 딸도 한결 유해짐을 느꼈다. 아빠가 팔짱이라도 낄라치면 손사래를 치고 난리법석을 떨더니 오늘은 아빠의 장난도, 애교도 무사통과되니 정작 아빠가 놀란다. 알다가도 모를 사춘기다. . 두줄로 걷기도 하다가 한 줄로 걷기도 하고, 나란히 함께 걷다 보니 동네 한 바퀴가 순삭이다. 동네 반바퀴를 돌았을 때부터 딸과 손을 잡고 걸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는데 사춘기라는 고비를 훌쩍 뛰어넘은 듯하다. 장하다. 나는 아이의 변화를 마주하며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고맙고 또 감사했다. . 함께 걷다 보니 가족을 더 챙기고 싶고, 더 귀 기울이고 싶어졌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이 고마우면서도 천천히 컸으면 하는 바람도 들었다. 걷는 내내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참 오랜만이다. 찬 공기가 달달하게 느껴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잘거리는 아이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