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이 가까워졌을 무렵 진료를 다 받고 나온 할머니께서 볼링공만 한 호박을 건네주셨다. "이게 이래 봬도 단호박이라서 맛있다. 집에 가서 해 먹어" "아이코, 고맙습데이, 엄마 드시지~" "무겁기도 하고 내는 많이 먹었다." "감사합니다."
건네주시는 호박을 두 손으로 끌어안듯 받아 들고 수부 금고옆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늙은 호박이지만 동글동글 인물이 참했다. 겉이 예쁘니 속도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집에 호박 많은데...' 우리 집 텃밭에 이미 호박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누렇게 익어가는 중이다. 내가 가져가는 건 욕심 같아서 같이 일하는 선생님께 의중을 여쭈었다. "ㅇㅇ 엄마가 먹으라고 주시는데 샘 드실란교?" "진짜? 그래도 되나? 내 호박 좋아하는데, 고맙니데이~" 잘 여쭤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거지만 나누는 기쁨에 신이 났다.
잠시 뒤, 사모님께서 나갔다 오시더니 샤인머스켓을 싸게 샀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오늘은 경주에 장이 서는 날이라 병원 앞 도로는 장사하시는 분들로 가득했다. 병원과 가깝게 과일 파는 사장님이 계신데 그곳에서 샤인머스켓을 사 오셨다 했다. 싸게 샀다는 소리에 같이 일하는 선생님도 잠시 갔다 오겠노라 하시며 나가시는데 사모님도 뒤따라가시는 게 아닌가?
'어디를 가시는 거지?'
얼마 후, 선생님은 포도상자를 3개나 들고 돌아오셨다. "사모님께서 사주셨어" "진짜요?" 일하는 직원들에게 한 박스씩 선물로 주셨다. 가족들이 모두 좋아하지만 비싸서 못 먹던 과일인데 박스로 이렇게 받으니 입꼬리가 내려오 질 않는다. 먹는 동안은 입도 즐겁고 행복함에 젖어있을 듯하다. 먹는 거 사주는 사람이 최고라더니 오늘따라 사모님 뒤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다.
퇴근길, 두 손은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주는 것도 기쁘고 받는 것도 행복하구나' 다시 한번 깨닫는 귀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