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주 Nov 03. 2023

임신 중 당겼던 음식을 아이가 좋아하다니

나에겐 2명의 자녀가 있다.
아들, 딸 남매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하나도 없다.
식성부터 취미, 관심사가 완전히 상이하다.
한 배에서 나와도 다르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아이들을 키우면 키울수록 격하게 와닿는다.






첫째 아들을 임신하고 9개월까지 병원근무를 했었다.
임신 중기까지는 기숙사에서 지냈던 터라 같이 지내던 물리치료사선생님께서 늘  뭐가 먹고 싶냐고 물으셨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 하루는 돈가스, 하루는 막창, 하루는 삼겹살, 입맛 당기는 대로 고기를 사주셨다.
신랑처럼 일거수일투족을 다 곁에서 돌봐주셨다.
아직도 여전히 감사하다. 자주는 아니지만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마음을 전하며 살고 있다.

아들을 임신하니 고기가 당기더니 둘째는 줘도 안 먹는 과일이 기길래 딸이구나 싶었다.
식후 과일을  싫어하고, 내 돈 주고 과일을 사 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역시나 딸이었다. 아들 때는 오로지 고기만 당기더니 둘째를 임신하고 나서부터 내가 내 돈으로 직접 과일을 사 먹었다.
게다가 매운 건 왜 그리 먹고 싶은지, 땡고추는 입에도 안 대던 내가 매운 것을 찾아먹었다.
입맛이 없을 때나  매운 것이 당길 때면 나는 엄마가 해주시던 '김치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김치, 국수, 깨, 참기름, 올리고당만 있으면 끝!!
재료준비도 손쉽고 만드는 건 더 쉽다.

김치를 자잘하게 썰고 국수를 삶는다.
삶은 국수에 김치와 깨, 참기름을 붓고 올리고당으로 간을 하면 된다. 조금은 단 게 들어가야 입에 짝짝 붙는다. 감칠맛이 라고 해야 하나.


엄마가 해주던 김치국수는 단짠의 조화가 최고였다.
엄마처럼 잘 만들고 싶지만 흉내만 열심히 내고 있다.






오늘 아침, 딸아이가 급하게 음식을 주문했다.
"엄마, 나 김칫국수해 줘."
"김치국수? 다이어트한다며?"
"한 그릇만 먹을게"
다이어트를 한다고 공표를 했으니 눈치껏 먹는 게 눈에 보인다.
한 그릇으로 부족할 거 같아 국수도 2인분이나 삶았는데 남게 생겼다.
"많이 있으니 먹고 더 먹어"
"아니, 한 그릇만 먹을게"
.
.
.
"더 안 먹어?"
"응, 잘 먹었습니다"
 한 그릇 곱게 담아줬더니 게눈 감추듯 뚝딱 비워버린다.
저리 잘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한다고 애쓴다.

딸이 적게 먹는 바람에  한 그릇이 남아 나도 자리를 잡고 제대로 앉아 젓가락을 움직였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젓가락질이 멈춰지지 않을 만큼 맛있었다.
김치국수 덕분에 소환된 임산부 시절, 김치국수를 해주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까지 모조리 충족되었다.

김치국수를 처음 해준 뒤로 계속되던 주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내가 임신 때 당겨하던걸 아이도 즐겨 먹는다는 게 신기했다.
이런 걸 보면 엄마와 아이가  탯줄로 연결되어 있어서 똑같이 느끼고 받아들인다는 방증이 되는 것 같아 신비롭기까지 하다.


또 조만간 김치국수를 해달라고 조르겠지만 기꺼이 해줄 것이다.
아이는 또 다른 나였기에  꼭 해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각 김밥, 이거 팔아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