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이 단단해지고 싶다

포항 환호공원 스페이스워크 & 포항 해상 스카이워크

by 박현주

설연휴가 끝나고 모두가 새롭게 시작했던 평온한 평일.
조카도 집에 데려다 줄 겸, 어디든 걷자고 신랑과 단둘이 나섰다. 운동이라면 질색하는 두 아이는 집에 모셔두고.

"포항 거기나 갔다 올까?"
"거기가 어디고?"
"다리 큰 거 있잖아, 새로 생긴 거~꼬불꼬불하고..."
"아, 스페이스 워크"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포항까지 달렸다.
가는 길에 뜨끈하고 값싼 중화요릿집에 가서 굴들은 짬뽕을 한 그릇씩 뚝딱하고 마저 달렸다. 자전거운동하다가 알게 된 집이라는데 싸고 맛있어서 꼭 같이 와보고 싶었단다. 역시 내 생각하는 건 신랑밖에 없다.



먼발치에서 철구조물이 반짝거리는 게 보인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이.
내비게이션을 보고 해변가 옆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비좁은 골목길을 지나 등산로 같은 길을 올랐다.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경사가 가팔랐다. 등산하러 온 줄 착각할 뻔했다. 그곳으로 올라가는 길이 여러 갈래인지 그때는 몰랐다. 알고 보니 완만한 길도 있었다는 게 함정이다.

짧지만 강렬했던 길을 오르니 눈앞에 '스페이스 워크'가 번쩍이는 자태를 뽐내며 으스대고 있었다.
밑에서 봤을 땐
'이걸 갖고 뭘 무서워해? 갓난아이도 충분히 가겠다.'
만만하게 보고 실언을 해댔다.
아니나 다를까 중간지점까지 올라가 왼쪽계단을 오르는데 3분의 1 지점도 못 가서 후퇴했다.



계단을 열닷개정도 밟고 올라서면 양쪽으로 길이 다르게 나있다.
롤러코스터가 지나갈법한 길이다. 계단은 넓으나 중앙지지대하나에 얹어져 있는 듯한 모습이라 바람이 불면 한쪽으로 쏠려서 넘어질 것 같은 불안함이 계속 든다.
그날따라 바람도 고약하게 불어댔다. 흔들거리는 계단을 오르다 보니 오만가지생각에 나의 불안은 더욱 고조되었다.
'바람이 불어 떨어지면 어쩌지? 옆으로 기대면 무게가 안 맞아떨어질지도 몰라.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 아직 여기서 사고 났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괜찮을 거야. 괜찮겠지?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입장을 왜 받는 거야?'

갖가지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다 보니 다리는 천근만근이었고 보다 못한 신랑이 멀리 보란다. 왼쪽은 실패했지만 오른쪽은 성공하리라는 결심과 다르게 3분의 2 지점에서 되돌아왔다.


멀리보이는 포스코



먼바다의 경치는 말이 필요 없는 예술작품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눈아래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차있었다. 언덕에 지어진 스페이스 워크가 높은데 위치하다 보니 집들이 장난감 같아 보이자 공포가 온몸을 에워쌌다.

'아파트가 내 눈아래에 있다. 여기서 떨어지면 끝이다. 누가 스릴을 즐기는 곳이라 했노? 이건 스릴이 아니라 공포다. 공포'

공포체험이지 스릴체험이 아니었다. 겁 없이 걷는 아이와 아빠도 있고, 나보다 더한 겁쟁이들도 있었다.
간 크기의 극간을 눈으로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도망치듯 내려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다시는 안 올라갈 테다.'
굳은 결심을 하고 차로 돌아가는 길.
신랑의 지인께서 해안길이 걷기 좋게 잘되어있다고 가르쳐주신 곳이 있어서 그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차를 몰고 오지 않은 길로 계속 들어가 보았다. 포항이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나도 이곳은 처음이었다.



'포항 해상스카이워크'라고 적혀있었다.
길 안이 다 통유리라 바다가 보였다. 영덕 가는 길 강구에도 삼사스카이워크가 있는데 여기에 있다는 건 정말 몰랐다.
다음에 엄마도 모시고 와야겠다고 조용히 읊조렸다.
다리 위에서 호미곶도 보인다 해서 뚫어져라 바다를 응시했다. 맑은 하늘덕에 볼 수 있어서 행복해졌다.



갓난아기 때 이사와 학창 시절을 보낸 호미곶을 먼발치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잠시 여유를 부리다 해변 쪽으로 걷다 보니 이정표가 있었다.
해파랑길? 해안길?
한번 가보자는 신랑말에 두말없이 따라나섰다.
나무계단이 어찌나 많던지 극한의 힘겨움을 이기고 나니 평지의 편안함과 바다가 훤히 보이는 시원함까지 고루 맛볼 수 있었다.
길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대나무숲도 나오고 등대도 나왔다. 산길을 다 내려오니 바닷길이 준비되어 있었다.



찻길로 걸었는데 찻길옆은 바다와 만나있었다. 나는 향수가 녹아있는 바다내음을 좋아한다. 짠내라고 하기도 하고 형용할 수 없는 비릿함도 있지만 나에게는 행복이 깃든 향기이다. 바다내음이 나의 기분을 업시켜줬다.




춥긴 추운가 보다. 테트라포드가 바닷물에 맞아 얼어있다. 바다에 오래 살았지만 바닷물고드름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마치 길옆은 딴 세상인 것처럼 느껴진다. 자갈 위로 떨어진 바닷물이 솜이불이 되어 덮어진 듯하기도, 자갈이 보석으로 변한 것 같기도 하다.
바다는 다양한 마법을 보여주는 요술쟁이 같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봉지와 작대기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분들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미역을 줍는 모양이다. 며칠간 세차게 불었던 바람 덕분에 미역이 떠내려온 것이다.

좀 더 걷다 보니 아예 물에 들어가 미역을 건지시는 분도 계신다. 우리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미역이 한 바구니다. 이쁜 것만 골라 담으시는 것 보니 솜씨가 노련하다.
우리도 질세라 여기저기서 미역을 찾기 시작했다.
미역을 찾는 동안 군소도 2마리나 만났고 성게도 만났다. 찾아보니 미역이 한아름이다.
직접 뜯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불법도 아니라 하셨다.
든든하게 가방 가득 담아 집으로 향했다.


군소 2마리 물에 넣어줬어요



돌아오는 길은 잘 정비된 바닷길로 걸어왔다. 산도 타고 바다도 걷고 미역까지 얻은 속이 꽉 찬 하루를 선물 받았다.
그냥 걷기만 하려 했는데 더 많은 것을 주는 자연에게 고마운 하루였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안중근의사의 명언처럼 이제 하루라도 걷지 않으면 엉덩이에 가시가 돋칠 것 같다.
걷는 게 상당히 매력적이고 즐겁다. 즐기게 되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다음번엔 경주에서 포항까지 걸어보자고 신랑하고 약속했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오늘도 걷기로 나의 내실을 다졌다. 안과 밖이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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