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가 막힌다 정말 - 4

대관령 선자령

by 박현주

새벽 2시경, 옆방에서 술 취한 아저씨가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밤잠을 설쳤다.
오늘 열심히 걸어야 한댔는데 밤잠을 설쳐 내심 걱정되는 아침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안 춥네?'
시동을 거는데 영하 9도였다. 이 정도면 걸을만하겠다 생각했는데 주차장을 벗어나니 영하 15도로 떨어진다. 최강 한파가 코앞까지 찾아온 모양이다.

무서운 마음은 일단 접어두고 소양강댐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다목적댐이고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댐이라고 하니 괜스레 뿌듯해졌다. '내가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어졌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댐이 눈앞에 있다니 실감이 나질 않았다. 댐 안에 여객선이라니, 예상치 못했던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타이밍 무엇? 시간을 잘 맞춰 가서 일출도 보고 올 수 있었다. 살갗의 차가움이 자리 잡기도 전에 뜨끈한 무언가가 가슴속에 가득 찼다. 일출의 빛이 따사롭게 나를 감싸주었다. 따뜻하고 고마운 일출이었다.



일출을 보고 난 후 최종목적지인 대관령 마을휴게소로 향했다.
대관령에 가서 황태해장국을 맛보려 했으나 그때까지 아침을 참기엔 힘들다고 결론 내리고 휴게소 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날이 선 바람과 공기가 매섭다. 이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관령 마을휴게소에는 이미 차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있다.
배낭을 메고 완전무장을 해 걸어가는 분들도 보인다.
트레킹 이랬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리도 완전무장을 했다. 바람한줄기도 용납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꽁꽁 싸매고 출발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백패킹의 성지 '선자령'이었다. 휴게소부터 선자령까지는 5km 구간이다.
대관령 마을휴게소가 이미 840m의 높은 지대에 있기 때문에 해발 1157m의 봉우리까지 쉽게 갈 수 있대서 겁도 없이 씩씩하게 산을 올랐다.
눈에 미끄러질까 봐 용을 써서 그런지, 신랑의 걸음에 맞춰가려고 빨리 걸어서인지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때 신랑에게 얘기를 해서 속도도 줄이며 쉬엄쉬엄 갔어야 했는데 최후에 벌어질 상황은 꿈에도 모른 체 눈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장갑을 벗고 사진을 찍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잠시지만 손가락 끝이 찢어지는 듯했다. 좋은 풍경을 사진에 담고 싶은 마음도 사치였다. 주차했을 때 이미 영하 17도를 가리키고 있었고, 산속에서 느낀 체감온도는 영하 30도를 넘나들었기 때문에 엄두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눈만 내놓고 걷는데도 불어오는 바람은 아프다 못해 따갑다가 쓰리기까지 했다. 태어나 이런 고통은 처음 맛봤다. 아주 매콤하고 따끔한 맛이었다.
처음 만난 혹한의 날씨였지만 경치구경은 빼놓을 수 없었다.



자작나무숲, 잣나무숲은 놓치기 싫은 구간이었다.
신랑은 눈이 적어 상고대를 못 본다며 아쉬워했지만 나는 이만큼 쌓인 설산은 처음이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신랑도 신난 강아지처럼 눈밭을 뒹굴거렸고 아이들이 눈장난하듯 던지며 놀기도 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대구 팔공산 동봉에서 적게 쌓인 눈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이 안보일정도의 설산은 처음이라 신기했고 설레었고 반가웠다. 설산의 매력에 빠져들기 충분했다.

입김이 거세지는 만큼 눈앞이 캄캄해졌다. 입김이 나오자마자 안경에 붙어 얼어버리는 괴이한 현상도 접했다.
'냉동고가 따로 없구나'


마주치는 분들을 살펴봐도 선글라스를 쓰신 분은 많았지만 안경 낀 분은 보지 못했다.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음을 반성했다.

반쯤 왔을 때 벤치가 있었고 잠시 숨을 고르었다. 신랑이 단백질 초코바를 꺼내줬다.
가뭄의 단비처럼 너무 반갑고 행복했다.

선자령 정상탈환이 신랑의 목표였다면 나는 힘겨운 뒤 먹을 수 있는 초코바를 먹는 게 목표였다.
힘들고 나서 먹는 초코바는 그냥 먹는 것보다 스무 배는 맛있기 때문이다. 초코바의 달콤함은 게눈 감추듯 사라져 버렸고 아쉬움을 안은 체 다시 발을 움직였다.



하산하는 분들의 가방마다 플라스틱 눈썰매가 눈길을 끌었다. 하산 시 주로 이용해 빠른 하산에 사용된다는데 등산객과 부딪힐 것을 생각하면 아찔했다.
아가씨 2명은 비닐쇼핑백 큰 것을 깔고 앉아 손잡이를 줄 삼아 타고 내려갔다. 철저한 준비성에 감탄했다.
가는 곳곳마다 산이 주는 재미가 솔솔 했다.
미리난 눈길을 따라 오르고 또 올랐다.



앞서가던 분들의 걸음이 느려지는 것을 보니 정상이 멀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하나둘씩 보였고 탁 트인 곳이 나왔다. 바람의 언덕이라는 백패킹의 성지에 도착한 것이다. 탁 트이고 넓은 평지라 텐트 치기에 좋은 명당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주차장부터 선자령까지 5km 구간이지만 체감은 10km 같았다.

눈 때문에 몸은 힘들었지만 눈(雪) 덕분에 눈(目)이 즐거웠다.

경치 한 번 둘러보고 봉우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바람이 어찌나 세던지 육중한 내 몸을 가볍게 밀어줬다.

거센 바람 덕분에 올라가는 길이 어렵지만은 않았다.


드디어 정상이로구나~

이 맛에 등산을 하는구나 싶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정상의 맛은 초코바보다도 달콤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더니 등산도 그랬다.


힘들게 정상을 찍고 나니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고, 어떠한 실패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찌 온길인가? 얼른 인증 사진을 찍고 하산했다.
아이젠을 끼고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뽀드득뽀드득, 사각사각 소리가 재미나 금세 내려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신나게, 발걸음도 가볍게 내려왔다.

룰루랄라 즐거운 발걸음으로 하산하고 있는데 kt송신소를 지날 무렵, 손끝이 갑자기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계속 끼고 있던 장갑이었고 올라갈 땐 후끈후끈해서 벗어버리고 싶었던 장갑이었는데 이상했다.
차갑다 못해 감각이 무뎌지는 것 같았다.
주먹을 꽉 쥐고 주머니에 넣고 내려왔는데도 기분 나쁜 아픔이 지속됐다.

차에 도착하자마자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덜 떨렸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나도 알 수 없는 한기가 몸을 파고들었고 지속적인 떨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소변을 보고 나면 체온조절을 위해 몸이 떨릴 때가 있다. 그 증상이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계속, 강하게 나타나니 덜컥 겁이 났다.
내가 그런 상황인 줄 몰랐던 신랑은 먹을 것을 보러 간다고 차에서 내린 뒤였고 나는 최대한 보온에 힘썼다.
'왜 이러지? 무슨 일이지?'
추운 것 없이 잘 내려왔고 손 시린 게 다였는데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급작스레 나타난 증상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이러다 잘못되는 건 아니겠지? 별일 있겠어? 왜 자꾸 떨려~"

이내 신랑이 돌아왔고 내 몸상태를 알렸다.
"땀났을 때 얘기했었어야지. 우리는 정상을 찍는 게 목적이 아니라 페이스를 잘 유지해서 재밌게 잘 다녀오는 게 목적인데 그럴 땐 얘기를 해야지."
"평소 등산 때랑 비슷하기도 했고 컨디션도 괜찮았는데"
"그게 저체온증 증상이잖아. 큰일 나려고"
"몰랐어"

때마침 사온 컵라면으로 몸을 데울 수 있었다. 바깥온도가 어찌나 차가운지 금방 받아온 컵라면국물이 미지근해져 있었다.

30분쯤 지나니 떨림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저승길 앞까지 다녀온듯한 무시무시한 기분이 들어 시무룩해졌다.
'휴~인자 살았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살아난 것 같아 감사했고 무탈함에 기뻤다.
또 하나 배웠다지만 무지함의 무서움을 실감했던 찌릿한 시간이었다.

하산하던 길, 여름용 베이지색 플레어 롱스커트를 입고 산을 오르는 여성분을 봤다. 마릴린 먼로처럼 치마를 휘날리며 걷고 있었다. 맨다리가 다 보였는데 심히 걱정되었다. 또 한 여성분은 베이지색 롱코트를 입고 산 정상부근까지 오신 것도 봤다.
아무리 강철체력이라도 이런 극한의 추위에, 그 복장으로 4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염려됐다.

보통 선자령을 다녀오면 4~5시간이 걸린다는데 우린 3시간 10분 소요됐다. 얼마나 빨리, 급하게 다녀왔는지 도착해서야 깨달았다. 하나를 배웠다지만 목숨이 담보가 되었다는 것도 모른 채 산을 다녔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한 노부부가 하산을 하고 하이파이브를 한다.
정말 흐뭇한 모습이고 감동적이었다. 무엇을 하든 무사히, 건강하게 즐기는 게 진정한 프로의 자세가 아닐까? 나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




이번 강원도 여행에서 얻은 건 무엇일까?
손가락한마디만큼 성장했는 것이다.
힘들었지만 힘듦을 견뎌낸 내가 자랑스럽고 힘겨움을 행복이었다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자랐다고 인정해주고 싶다.


오늘도 묵묵히 나의 자리에서 자라고 있다.
넘어질 때도, 흔들릴 때도,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모든 걸 유연히 넘기고 견뎌낼 수 있는 자양분을 여행에서 얻었으니 오늘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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