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선물 같은 하루였다

봄을 만끽한 오늘

by 박현주

오늘은 봄을 만끽하고 왔다.
이런 여유가 얼마만인지 기억도 없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오늘만큼은 봄으로 가득 채웠다. 그것도 꾹꾹 눌러 담았다.






지인언니와 모닝만찬이나 해볼까 해서 전화를 넣었다.
아이등교를 위해 모두 움직이는 엄마들이라 거리낌 없이 전화를 넣었다. 보통 급한 일 아니면 9시 전에는 전화를 먼저 하는 일이 없지만 아이들 개학날, 먼저 나를 찾아주셨던 언니가 떠올라 머뭇거림 없이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아이 등굣길이었다.
다른 언니공방으로 가려했으나 언니 집으로 오라 해서 이른 시간이지만 언니집을 방문했다.
집 바로 옆 건물이 인도소품샵인데 집과 소품샵사이에 커피숍을 만들었다.

흰 나노 태풍 전까지 빨간 천막아래 큰 테이블을 마련해 늘 인도짜이나 직접 볶은 커피를 내려주셨는데 이젠 당당하게 커피숍을 준비하셔서 정식적으로 운영을 하신다.


거의 점심때를 전후로 오픈하시는데 나는 영업 전 손님이 되었다. 밉상일까 봐 걱정했는데 흔쾌히, 너그러이 받아주실 뿐만 아니라 아침부터 배 터지게 대접을 받았다.


선물받은 아침밥상



도착 후, 30분도 안 돼서 다른 언니도 합체했다.
주인 언니가 차려주는 빵과 과일, 모닝커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들만의 이야기로 시간이 무르익어갔다.
뒤늦게 합석한 언니는 자격증공부를 위해 2시간 동안 자리를 비웠고 나는 그대로 남아 언니와 함께 일광욕을 즐겼다.


눈부실까 봐 주신 모자로 눈만 가리고 햇볕을 흠뻑 받아들였다.
뜨끈한 온기, 아침과는 다른 훈훈한 바람, 바람에 부딪혀 쫑알대는 풍경소리까지 너무도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평온해라. 살 것 같네'

매일 하는 언니의 루틴대로 나도 몸을 맡겨보았다.
알맞게 부는 바람이 나를 어루만져주는 듯해 편안해졌다.
언니가 살면서 얻은 갖가지 교훈들, 이야기들을 전해 들으며 마음부자가 되었다.
그런 언니에게 무척 고마웠다. 인연에 감사함이 절로 넘쳐났다.

잠시 침묵으로 햇볕을 받아들이고 있다가 쑥을 케자고 하셔서 신나게 바구니와 칼을 들고 언니네 집 앞마당으로 갔다.
우리 동네와 다르게 봄이 서둘러 도착한듯했다. 여기는 경주가 아니라 남쪽마을이냐고 신기함을 내비쳤다.



홍매화와 무스카리



홍매화도 지고 있고 수선화는 꽃봉오리를 터트렸고 무스카리의 방울방울 꽃봉오리가 포도처럼 매 달려있다. 튤립도 잎이 애법 올라와있다.
이곳만 마술로 봄을 끌어당겨놓은 듯하다.

쑥도 키가 애법 커있다. 우리 집 마당에 자라고 있는 쑥은 이제야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는데 말이다.
신기하다 못해 이상하기까지 했다.

나는 촌에 살기에 적합화된 사람처럼 일손이 빠르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언니의 쑥바구니보다 내 쑥바구니가 더 가득했다.
"야~~ 너 손 빠르다. 다음에 장사하면 너랑 해야겠다"
라며 우스갯소리까지 하신다.

어릴 적부터 해오던 거라 좋아하고 재밌게 했다. 쑥을 조심히 잡고 뿌리 바로 위쪽을 칼을 이용해 잘 분리시킨다. 쑥을 잡은 손으로 쑥의 기운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뜯은 쑥은 언니께 양보하며 저녁에는 들깨 넣은 맛난 쑥국을 드시길 바랐다.

쑥을 뜯고 나온 마당 한편엔 동강할미꽃이 수고했다는 듯 꽃봉오리를 펼쳐 인사를 한다. 쪼그리고 앉았던 수고로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쑥 케는 나와 쑥&동강할미꽃



뜯은 쑥을 씻어두고 목을 축이자며 선물 받으셨다는 에프터눈 티를 맛 보여주셨다.
과일향이 나는 향내를 풍겼고 맛은 홍차였다. 산뜻하고 부드러운 홍차의 맛이었다. 홍차는 그다지 안 좋아하는데 이 에프터눈 티는 맛있어서 재탕까지 해서 마셔댔다.


냉이꽃과 에프터는티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얼마나 먹고 마셨든지 화장실을 가야 했다.
예전에는 언니네 집으로 들어가서 볼일을 해결했는데 커피숍을 준비하며 집 밖화장실도 마련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시골생태변소'
나는 퐁당퐁당 화장실을 생각했지만 또 다른 화장실이었다.
신기해서 화장실도 사진으로 남겼다.
냄새가 나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볼일을 보고 쌀겨만 뿌려주면 되는 친환경적인 변소였다.
제로웨이스트에 앞장 쓰고 있고 무소유를 부러워하는 언니이기에 저 변소를 설치한 용기와 신념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생태화장실 설명서와 쌀겨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나라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조금 번거롭고 귀찮을 수 있지만 집화장실을 공유했을 것이다.
정말 많이 배운다.
삶의 자세부터 허투루 하는 게 없는 언니다. 좋은 것들은 흘러가기 전에 흡수해서 내 삶에도 반영하고 싶다. 쉬는 것도 행복한데 배우기까지 한다. 언니 덕분에 나는 오늘도 성장한다.

아프리카 속담에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있다.
혼자만 생각하고 내 고집만으로 귀를 막고 살아간다면 물론 빨리 도착할 수는 있겠지만 분명 외롭고 힘들 것이다.
그와 다르게 의지하고 도와가며 삶을 살아간다면 마음부자로, 행복함으로 늙어갈 것이다. 그것도 함께.

함께 걸어갈 분들이 내 옆엔 가득하다.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가. 나는 멀리 가는 길이 두렵지도, 힘들지도 않다.

인생길을 걷다 보면 분명 겨울 같은 추운 날씨도 경험하고 체감적으로 더욱 크게 다가오는 날도 있겠지만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얼은 땅을 비집고 올라온 쑥처럼 견뎌내고 이겨내다 보면 따뜻한 해님도, 포근한 바람도, 신비로운 일들도 만나게 될 것이다.

따뜻한 해님을 만나기도 전에, 포근한 바람을 느끼기도 전에, 신비로움을 만끽하기도 전에 포기해 버린다면 선물 같은 봄은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이다.

모든 순간이 선물 같은 하루였다.
오전은 봄을 체감하고 만끽하며 봄기운을 오로지 받아들이고 즐겼다. 간만의 여유에 황홀하기도 했다.
한순간도 버릴 수 없는 선물로 꽉 찬 시간들이었다. 성장할 수 있었음에 감사, 만날 수밖에 없던 우리의 인연을 되돌아보며 감사를 되새겨본다.

나와 함께 멀리까지 걸어가 줄 사람들이 있기에 든든하고 힘이 나는 하루다. 나는 복 받은 인생이 분명하다.
받은 복은 나누며 사는 인생이 되도록 노력하고 어떻게 나누어야 될지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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