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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수 할배 Aug 03. 2024

훈장 전수식의 분위기

(3화) 이래서 의식이 필요하구나

                                                                                                            당신의 행위가 당신이다. 

                                                   사람은 기억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위에 의해서 정체성이 결정된다. 

                                                                                                                (영화, 토탈 리콜에서)


2월(2024년) 하순에 총장실에서 전화가 왔다. 

정년퇴임식을 거행할 예정인데 순서를 말씀드리고 싶다고. 


훈장은 대개 2월 말에 학교로 도착하는데 정확한 날짜를 알기 어려우니 3월 4일에 수여식을 갖겠다. 

설 교수님 한 사람을 위한 퇴임식이며, 총장실에서 보직교수들이 참여한 가운데 훈장을 수여한다. 

그런 후에 축하 연회를 열기 위하여 식당으로 이동한다. 

전화 말미에 내가 준비할 일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더니 없다고 하였다. 


10년 전만 해도 퇴임식은 거창하게 진행하였다. 교문에 현수막이 달리고, 식은 큰 강당에서 열렸다. 퇴직자의 배우자가 함께 단상에 앉고, 자녀들도 초청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간소화되더니 코로나를 겪으면서 대폭 축소되었다. 훈장은 강당이 아니라 총장실에서, 전체 교수가 아니라 보직교수들만 모여서 이루어졌다. 


이번에도 그렇게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전자 우편을 받아 보니 훈장수여식 장소가 소규모 강당으로 변경되었다. 이제 코로나가 끝나서 그러리라 짐작했다. 초중등학교 교사나 교장으로 퇴직한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아도 요즈음은 퇴임식을 학교 선생님끼리의 식사로 마무리한단다. 


드디어 3월 4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이므로 진지해졌다.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려는데 9시 50분경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총장님이 당일의 일정을 알려주었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통화의 마지막에 “혹시 내빈을 초대하였는지?” 물었다. 처음 듣는 질문이라 살짝 당황하였다. 이전에 두 번 통화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마지막 순간에 내빈 초대라니. 그래서 아내가 함께 가도 되는지 물어보았더니 당연히 된다고 말해주었다. 많이 당혹스러웠다. 


시실 아내는 퇴임식장이 총장실에서 시청각실(월은홀)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러면 배우자가 참석해야 될 것 같으니 학교 측에 물어보라"라고 하였다. 그런데 내가 우리 학교는 최근에 그러한 전례가 없다고 하면서 문의하지 않았다. 감각 좋고 동작 빠른 아내는 총장님의 말을 듣자마자 준비하기 시작하여, 함께 학교로 운전하여 이동하였다. 식장에 도착하니 총장과 보직교수 일행도 입장하고 있었다.   


식장에 들어서니 연단 위에는 내 이름이 적힌 퇴임식을 알리는 현수막이 게시되어 있었다. 교수와 교직원분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서로 대화하지도 않고 조용하게 앉아서 의식에 참여하였다.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엄숙하게 느껴졌다. 나는 총장님이 안내하는 대로 앞자리에 앉았다. 보직 교수 몇 분이 와서 인사를 하였다. 의식은 다음 순서로 진행하였다. 


-국민의례

-훈장 수여

-기념품 및 꽃다발 증정

-총장 축사

-기념 촬영


퇴직교수로서 훈장 수여식에서 느낀 점을 몇 가지 기록하고 싶다. 총장으로부터 훈장을 받기 위하여 단상으로 올라갔다. 총장은 훈장을 전해주고 악수를 하였다. 이때 총장이 고개를 90도로 숙인 장면이 사진에 잡혔다. 아마 퇴임하는 교수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으리라. 


기념품을 받는 순서에서는 교수협의회, 교직원협의회에서 금일봉을 전달했다. 그리고 관계부처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 위 두 협의회를 비롯하여 교육학과, 글로벌 인재교육센터, 동료 교수 등이었다. 금일봉 중에는 예상 이외의 액수가 들어 있기도 하였다. 또한 꽃다발은 꽃의 종류가 여럿이고 색도 화려하여 감동이었다. 그동안 꽃다발은 입학과 졸업을 축하할 때, 그리고 현충원에 갈 때, 또는 음악회에서 보았다. 그런데 이 날 받은 꽃다발은 수준이 매우 높았다. 


총장님의 축사는 다정하게 느껴져서 감사의 인사를 충분히 전달받았다. 이어서 사진 촬영을 하였는데, 학교에서 전담하는 분을 지명하여서 질서 있게 진행되는데 기여하였다. 촬영 순서는 보직교수, 동료교수, 학과교수, 그리고 아내의 순서였다. 아내와 찍을 때 존경과 감사의 표시로 아내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약간 형식에서 벗어났을 수도 있으나 청중들이 좋게 받아들였다고 느꼈다.  


수여식을 마치고도 한참 동안 그 감동에 젖어 있었다. 이 수여식이 진행되는 동안에, 내가 기여한 부분보다 더 크게 대우받는 기분이 들었다. 감정이 흔들려서 한동안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총장에게 수여식을 엄숙하게 치러주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분도 고맙다고 답하면서, 정부가 보낸 공문에, 훈장 전수식은 국가와 대통령을 대신하여 수여하는 의식이므로 엄숙하게 진행할 것을 당부하였다고 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식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늘어난다고 느낀다. 그러데 이번 정년퇴임식에 참석해 보니, 의식을 통하여 배우는 점이 많았다. 사회생활의 시작과 끝에는 거의 ‘의식’이 있다. 입학식, 졸업식, 장례식, 취임식, 퇴임식 등. 이런 의식을 갖는 게 주최 측, 당사자, 참여자에게 큰 의미가 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의식을 중요시한다. 교회에서 예배와 성찬의식은 물론이고 정부에서도 의식을 거행한다. 심지어 유치원 초등 학생들의 친선 농구시합도 의식으로 시작한다. 정식 복장을 갖춰 입은 세 명의 심판이 입장하고, 이어서 양편 선수와 감독이 들어온다. 한 줄로 선 다음,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한다. 그리고 미국 국가를 부른 다음 시합을 시작한다. 


새로운 세대들도 의식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의식은 살아가면서 필요한 성품인 고요함, 경건함, 엄숙함, 진지함 등을 체험하는 기회가 된다. 개인이 집단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계기를 갖는데, 의식과 견줄만한 게 또 있을까?


훈장 받는 사람이 알아두면 좋은 사항을 정리한다.

1. 식의 순서를 정확하게 안다. '

2. 퇴임사를 준비한다. 

3. 가족과 친지를 초청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4. 동료 교수와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 

5. 당일에 촬영한 사진을 챙긴다.


*2024년 2월, 공주교대에는 총장직무대행체제로 운영되었다. 여기서는 편의상 총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You are what you do. A man is defined by his actions, not his memory.

*연합뉴스의 사진.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1024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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