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백 년 묵은 감나무

감나무에 얽힌 사연

by 노고지리

사람이 늙으면 뼛속이 빈다. 우리 집 감나무도 속이 비었다. 그래도 대장부의 기세로 우뚝 솟아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긴 밑동은 어른 서너 명이 감싸 안아야 할 정도로 굵었다. 거미줄 쳐진 구멍 속에는 빛을 못 본 검은 줄기들이 앙상하게 얽혀있었다. 그곳은 뿌리에서 올라오는 생명수를 나무 끝까지 올려주는 심장이었고 핏줄이었다.


우리가 이사 들어가기 전부터도 이미 고목이어서 “100년도 넘은 나무”라고 어른들이 말했다. 감나무는 우리들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행복과 슬픔을 지켜봤던 '살아있는 역사'였다. ‘우리 집의 수호신’이라고 나는 믿었다. 여름철 비바람이라도 휘몰아치는 날이면 큰 나뭇가지와 잎들이 너울거리며 파도 소리를 냈다. 우리 집을 하늘에서 지켜주는 것으로 나는 믿었다.


감이 빨갛게 익으면 장대와 망태를 들고 나무를 올랐다. 몸이 작았던 내가 안고 오르기에 벅찼지만 나무를 믿고 의지하며 손과 발에 온 힘을 모았다. 나무 키가 워낙 높아서 중간 높이만큼이라도 올라가야 했다. 끝이 뾰족하게 두 갈래로 쪼갠 대나무 장대와 새끼줄과 망태도 같이 오른다. 두툼한 가지에 몸을 기대고 장대를 감 쪽에 끼워 넣을 때는 몸의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어머니는 위를 쳐다보며 "조심하라"라고 소리를 지르신다.


총을 조준하듯 장대를 밀어 감까지 다가가야 하는데 장대가 무거우니 쉽지 않다.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가며 감꼭지가 붙어있는 작은 가지를 갈라진 틈으로 쑤셔 넣어 틀면 꺾인다. 끝에 매달린 감이 떨어지지 않게 주의하여 망태에 담아 밑으로 내려보낸다. 장대로도 닿지 못하는 꼭대기의 홍시는 눈이 쌓일 때까지 새들의 먹이로 남겨두었다. 참새와 까치들이 날아들었다.


감나무는 잔가지를 꺾어주어야 그곳에서 새 순이 나오고, 사랑의 열매가 달린다. 그래야 오래도록 달콤한 감을 얻을 수가 있다. 나무 오르는 것을 좋아하면서 우린 친구가 되었다. 아침 일찍 떨어진 감을 주었고, 숨바꼭질을 했고, 매미소리 들으며 그네를 탔다. 나의 놀이터였고, 내 키도 쑥쑥 자랐다.


감나무는 여름내 햇볕을 먹고 자란다. 늦여름쯤 되면 무성해진 잎도 뜨거운 열기에 달궈져 짙은 초록색으로 반짝인다. 잎 뒷면에는 쐐기(독충)도 살고 있다. 독충들은 한여름 불볕더위에 독이 잔뜩 올라 고슴도치처럼 하얀 털을 세우고 떼 지어 놀고 있다. 그들은 나뭇잎과 색이 비슷하다. 무심코 내 피부에 닿는 순간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거처럼 찌릿 거리며 쑤시고 아프다. 자기들 영역을 침범했다는 방어였다. 바늘에 찔린 듯한 통증은 너무 심하여 바로 내려와야 했다. 한번 쏘인 자리는 며칠 동안 가려워 긁으면 또 쓰라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감나무는 겉보기에는 튼튼해 보이지만 가지가 약하여 부러지기 쉽다. 나뭇가지는 죽은 것과 산 것의 구분이 쉽지 않다. 어느 날 평소보다 좀 더 높이 오르려다 썩은 가지를 잡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아래로 추락하였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두 팔을 벌린 채로 떨어지다 얽혀있던 가지에 몸이 얹혔다. 천만다행으로 감나무가 수호신이 되어 주었다.


그때는 농촌에 이렇다 할 간식거리가 없었으니 홍시는 바로 꿀맛이었다. 감을 깎아 지붕 위에 올려두면 쫄깃한 곶감이 되었다. 가을쯤 생감을 따서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두면 며칠 후 단감이 되어 맛있는 간식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감이 익을 무렵엔 자주 먹게 되어 변비가 생겼다. 아무리 힘을 써도 나오질 않고 찢어질 정도인데도 돌처럼 단단해져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않으면 결국 울음보가 터진다. 감을 많이 먹으면 고생한다는 체험을 확실히 했다.


겨울철 흰 눈이 쌓일 때면 감나무에 부엉이가 날아온다. 산속도 아닌 들 가운데 위치한 우리 마을까지 날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나무가 높았기 때문이며 붙어있던 감을 먹기 위해서 일 수도 있다. 달이 밝은 겨울밤 나무 위에 앉아있는 부엉이는 나만큼 크게 보였다. “우~욱, 우~욱” 하고 우는소리가 나는 무서워 밖에 나가질 못했다. 나갔다가는 나를 덮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소변만 보려도 밖으로 나가야 했으나, 부엉이가 우는 날은 사랑방 문창호지에 구멍을 내고 문밖으로 내밀어 일을 봐야 했다. 이튿날 아침 문밖에 얼어붙은 오줌을 발견하는 날이면 어른들에게 혼쭐이 났다.


어릴 적 나무를 타면서 ‘치밀한 준비성’과 ‘빈틈없는 일’, 그리고 ‘무서워도 해보자’는 도전 정신이 자연스레 몸에 배었다. 예로부터 감나무는 ‘수명이 길며, 좋은 그늘을 만들어 주고, 벌레가 끼지 않는다’ 했다. ‘나무가 백 년이 되면 천 개의 감이 달린다’라고도 했다. 그래서 감나무 고목이 있는 집은 ‘후손이 번창한다’고 했다. 이런 까닭에 외아들이셨던 선친께서 7남매나 두셨던 거 같다.


언젠가 ‘나무가 너무 오래되어 태풍이라도 불면 가지가 부러져 지붕을 덮칠 수 있다’고 걱정들을 해 주셨다. 나무를 베어내지 않으면 안채 집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고목이라도 새순은 매년 나왔다. 자르면 아니 된다고 떼를 쓰고 싶었지만 가슴만 아팠다. 나는 어른들이 알려주신 대로 왼 새끼줄(일상에서 쓰는 것은 오른 새끼줄 임)을 꼬아 옆에 있던 작은 나무에 연결하여 고목(古木)의 혼(魂)이라도 남아주기를 빌었다. 아들 나무가 되어줄 것으로 믿었다.


긴 동아줄을 나무 꼭대기에 연결시켜 텃밭 쪽으로 당기면서 높은 가지부터 톱질이 시작되었다. 나무는 흔들리며 몸부림쳤다. 단풍 든 잎은 떨면서 하늘을 날았다. 붉은 눈물 덩이들이 떨어졌다. 베어진 가지가 고꾸라질 때마다 천둥소리를 내면서 땅이 흔들렸다. 속이 빌 때까지 많은 것을 주기만 하였던 고목이,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그렇게 쓰러져 주었다. 누군가 '나무는 인간에게 깨달음과 성찰을 준 신의 선물'이라 하였다. 그 자리엔 아들 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허공엔 까치들이 맴돌았다. 나는 저만큼 물러서서 눈물을 참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랑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