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먹이 풀베기 텃세
정부의 검찰개혁에 따른 경찰 권한의 비대가 우려되는 가운데, 경찰은 권한이 늘어난 것만큼 무거운 책임이 주어져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르면 '경찰관은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의 보호와 사회 공공의 질서유지를 그 직무로 하는데, 이에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일정한 요건하에 수갑, 포승, 경찰봉 등의 경찰 장구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그 무기로 사람에게 위해를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 원칙이다. 직권은 남용되어서는 안 되고, 이를 남용하여 타인에게 해를 끼친 경찰관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농촌에 봄이 오면 농사 준비가 시작된다. 3월에 높은 산에 눈이 녹고 날씨가 풀리면 농촌 들에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5월부터는 본격적인 농사철로 들어선다. “오뉴월에 하루 놀면, 동지섣달에 열흘 굶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오뉴월에는 부지깽이도 석자를 뛴다”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5월과 6월은 농민들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이다. 모내기가 5월에 집중되므로 더욱 실감 나는 표현이다. 우리 가족들도 이때면 할아버지를 선두로 머슴 아저씨들과 어머니, 형 동생 할 거 없이 모두가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학교에서 귀가하면 내가 할 일은 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 오는 것으로 꼴망태 메고 들로 나가는 것이 일과였다. 집에서 가까운 논밭두렁은 남들이 이미 거쳐갔으므로 풀이 많은 곳을 찾으려면 부지런히 찾아다녀야 한다. 맨손으로 풀베기 작업을 한다는 것은 어린아이에겐 매우 위험한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날카로운 낫 날에 손가락을 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왼쪽 손가락에는 상처가 여러 곳에 남아 있다. 풀을 베는 자세에 따라 손가락에 상처가 자주 났기 때문에 논두렁 아래서 위쪽을 향하는 작업 자세가 안전하다는 나만의 요령을 터득하였다. 누군가 이런 작업 요령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혼자 경험하고 배워야 했다.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남의 콩밭에서 콩잎을 베다가 손가락에 큰 상처를 입기도 했다. 콩잎을 허락 없이 베었으므로 죄 값을 했을 것으로 스스로 반성했다. 그때 낫에 베인 상처 자국은 지금도 남아있으며 그 후유증인 듯 손톱은 지금껏 갈라져서 나오고 있다. 영광의 상처이다.
언젠가는 우리 집 머슴 아저씨 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틈틈이 농사일을 도와주었다. 내가 풀 베려 나가면 선뜻 동행해 주어 고마웠다. 그분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으로 일도 나보다 훨씬 잘하였다. 그런데 들에서 동네 다른 아이들과 시비가 붙었다. 낯선 사람이 동네에 나타나 풀을 베니 못 마땅한 것이었다. 동네 아이들의 영역을 침범했다며 텃세를 하는 거였다. 나는 우리 집 형이라고 설명했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 이였으므로 내 말에 아랑곳 않고 고씨 형에게 풀을 베지 말라며 옥신각신 하였다.
마침내 서로 몸싸움까지 하였다. 힘이 약했던 나는 그들의 싸움을 제지하지 못했다. 고씨 형은 몸이 날렵하여 동네 아이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고씨 형이 그들을 혼내주자 도망가면서 농작물을 밟았다. 나는 속이 후련했고 용감하게 물리쳐준 형이 더욱 든든하였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런 장소가 바로 파출소 옆이었으므로 순경 아저씨가 그 모습을 보았던지 싸움했던 형들 모두를 파출소로 불러들였다.
파출소 밖에서 순경 아저씨가 형들에게 하던 짓을 가슴 조이며 보았다. 내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싸움했던 두 형들에게 상대의 뺨을 번갈아가며 때리라 하였다. 두 형들은 처음엔 서로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때렸다. 이를 보던 경찰관이 시범을 보인다며 두 사람의 얼굴을 아주 세게 한 대씩 내리쳤다. 그러면서 ‘나처럼 때리라’는 거다. 두 형들은 보다 세게 가격 했다.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될 몹쓸 짓을 시킨 것이다. 20회 정도 뺨 때리기가 오가더니 결국 동네 형은 울면서 맞고 때렸다. 두 사람의 얼굴은 벌겋게 닳아 올랐다. 고씨 형은 끝내 울지 않았지만 나는 속이 타들어갔다.
경찰은 계속 우는 동네 형이 보기에 안타까웠든지 때리는 걸 중단시키더니 마지막엔 고씨 형의 얼굴을 사정없이 가격하였다. 형은 마지막 한 대를 맞고 쓰러지면서 울음이 터졌다. 나는 파출소 밖에서 그 광경을 보면서 너무도 무서워 새파랗게 질렸다. 파출소 밖으로 나온 두 형들의 얼굴은 붉다 못해 시퍼렇게 피멍이 들었다.
경찰관은 두 사람에게 동등하게 체벌을 가했어야 하나 동네 아이보다 객지에서 온 고씨 형에게 가혹하게 한 것에 대해 몹시 속이 상했다. 먼저 시비를 걸어왔던 자는 동네 선배였는데 그에 대한 판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린 생각이었지만 공정하지 못한 경찰관의 행동에 분노가 치밀었고 그 후로 경찰관들을 보기조차 싫어졌다. 결국 나 때문에 본의 아닌 싸움질과 경찰관에게 폭행까지 당했으니 모든 것이 내 탓으로 고씨 형에게 몹시 미안했고 마음이 아팠다.
당시 경찰관은 싸움이 벌어진 동네 청소년들을 올바로 계도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시골 파출소에 일이 없어 '아이들의 뺨치기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라는 것은 나의 오해였기를 바란다. 농촌에서 소에게 줄 풀을 논밭둑에서 베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논둑이 깨끗해져 농작물에 바람도 잘 통하고 병충해도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 단지 남의 농작물을 밟고 지나갔다 하더라도 민원이 제기되지 않을 정도로 경미하여 훈계나 주의, 훈방을 시키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뺨을 치는 것은 명백한 폭행 행위로써 타인에게 해를 끼쳤으므로 오히려 경찰관이 형사처벌을 받아야 했다.
고씨 형은 자기 집으로 돌아간 후 다시는 연락도 없고 와 보지도 않았다. 믿음직하고 멋지던 형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경찰의 직무 집행법은 도시나 시골이나 똑같이 적용돼야 할 것이니 시골의 농민들에게는 더욱 세심한 민중의 지팡이 노릇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