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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고지리 Feb 12. 2022

마늘의 비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겨우내 맘이 편치 못했다. 뭔가로 덮어주지 않았어도 강추위를 잘 이겨내 준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얼어버린 맨땅에 뿌리를 내리고 솟아오른 마늘은 무슨 운명을 타고났기에 모진 겨우살이를 해야 하는가. 지난가을 찬바람이 일기 시작할 때 싹튼 어린순은 엄동설한을 어렵게 버텨내더니 날이 풀리자 생기를 보였다. 한고비를 넘긴 셈이다. 아무리 추워도 얼어 죽지 않은 끈질긴 생명력은, 오랜 역사의 고난을 이겨냈던 우리 민족의 강인한 혼을 닮은듯하다. 한민족의 시조 신화 단군 설화에는 곰이 마늘과 쑥을 먹어야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되기 위한 시련의 과정에 마늘이 등장한 것은, 예로부터 마늘은 먹기가 쉽지 않지만 몸에는 좋은 식품으로 믿어왔던 것이다.



마늘의 신비로운 효능은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알려졌다. 필자가 1980년대 카이로에서 공부할 때, 기원전(BC) 2500년 전경에 만들어진 이집트 '쿠프 왕'의 피라미드 벽면에 그려진 상형문자에는 '건축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마늘 먹고 일을 했다'라는 설명을 들었다. 또한 '왕의 무덤에 마늘을 넣었던 이집트 사람들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 앞에서 맹세하는 것처럼 마늘에 뭔가를 기원했다'라고도 하였다. 이처럼 마늘은 수 천년 전부터 인간의 정력이나 원기를 회복하는 강장제(强壯劑)로서 뿐 아니라, 인간과 함께해야 하는 신앙의 존재로까지 믿어 왔음을 알 수 있다. 2002년 미국 『타임(Time)』지는 마늘을 세계 10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하였으며, 마늘은 그 자체로 먹어도 좋고 다양한 음식의 재료로 좋은 기능성 식품이라 예찬하였다. 미국암연구소(NCI)가 1992년에 발표한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Designer food'에는 현재까지 알려진 40여 종의 항암(抗癌) 식품들을 피라미드형으로 배열한 결과 마늘이 최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카이로 시에서 가까운 피라미드

이처럼 마늘은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다양한 기능이 밝혀지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건강식품으로 소비가 늘고 있다. 야구선수 박찬호와 축구선수 안정환이 해외 선수 생활 때, 마늘냄새 때문에 구박받았다는 이야기는 많은 한국인들이 흔히 경험했던 이야기이다. 우리가 코 큰 서양인들 만났을 때 은근히 느끼는 겨드랑이 냄새나, 동남아 음식에서 나는 향신료 식물(고수) 같은 느낌과 같은 것이다. 마늘의 특이한 향 때문에 외국인들은 거리감을 느끼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오래전부터 없어서는 안 되는 친근하고 익숙한 식품이다. 우리 식 문화가 생소했던 서양인들을 탓할 일은 아니며, 그렇다고 우리의 마늘냄새 때문에 쫄 일도 아니다. 근래 지구촌 사람들은 마늘의 효능을 인식하고 다양한 요리를 즐기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건순 슈퍼푸드』에 의하면 '마늘의 대표적인 성분은 알린(allin)이라는 유황 화합물이다. 알린은 아무런 향이 없지만 마늘 조직이 변하는 순간 알린은 조직 내 알리나제라는 효소와 작용해 자기 방어물질인 알리신(allicin)이 된다. 알리신은 매운맛과 동시에 독한 냄새를 풍긴다'라며 '냄새는 입은 물론 몸 전체에서 나온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알리신은 강력한 살균 · 항균 작용을 하여 식중독균을 죽이고 위궤양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까지 죽이는 효과가 있다. 아울러 소화를 돕고 면역력도 높이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춘다. 알리신이 비타민 B1과 결합하면 알리티아민으로 변하여 피로 해소, 정력 증강에 도움을 준다'라고도 했다. 『타임』지는 알리신이 페니실린보다 더 강한 항생제라고 소개했다. 또한 토양에 있는 셀레늄을 흡수, 저장하며 셀레늄 역시 암을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진 무기질이다. 마늘의 독특한 향 때문에 젊은이들이 기피하지만 이렇게 다양하고 탁월한 기능을 가진 식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치 않은 것이다.


집에서 가공한 흑마늘


우리나라에서의 마늘은 무, 배추, 고추와 함께 4대 채소 중의 하나로 매운맛을 제외하고는 100가지 이로움이 있다고 하였다. 마늘은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뿌리채소다. 곡물 수확을 마친 늦가을에 파종하여하지 무렵에 수확한다. 이는 겨울잠에서 깨어나(휴면타파) 봄에 성장하는 마늘의 생육특성 때문이다. 마늘은 이른 봄부터 빠르게 자라기 시작한다. 겨우내 숨겨두었던 에너지를 봄에 모두 발산하는 채소이므로 웃거름도 주어야 하고, 뿌리가 습해를 받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가 심는 마늘은 한지형과 난지형이 있는데, 한지형은 주로 중북부 지방에서 재배되고, 난지형은 중국에서 도입된 남도마늘, 스페인 산 대서, 인도네시아 산 자봉 마늘 등으로 주로 남부 지방에서 재배된다.


마늘은 조미나 향신료 등 요리의 주 재료로 활용되지만, 최근에는 칩이나 진액 등 가공식품으로도 많이 소비되고 있다. 이 밖에 마늘 기름을 이용해 약품으로도 생산되는 등 마늘을 이용한 다양한 기능성 식품이 증가하고 있다. 필자는 마늘냄새가 없으면서 먹기도 쉬운 '흑 마늘'로 가공하여 즐겨 먹고 있다. 수확한 마늘을 통째로 압력 밥솥에 보온 상태로 2주 정도 숙성시키면 마늘 색깔은 까맣게 변하며 젤리처럼 쫀득거리는 마늘로 변한다. 숙성과 발효과정에서 각종 항 산화물질이 응축되어 일반 마늘보다 10배의 항산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노화 예방과 피로 해소, 위장 건강, 고혈압 예방, 면역력 증대와 항 염작 용이 있다 한다. 맛이 달착지근하면서 쫄깃거려 먹기에도 좋아 매일 두세 쪽씩 먹는다. 수천 년 전 고대 이집트의 왕들도 즐겨 먹었다는 마늘을 알싸한 향 때문에 멀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생마늘을 먹기 힘들면 구워서도 먹는다. 마늘은 구워도 영양가의 변화가 거의 없으며 매운맛이 사라져 먹기에 훨씬 좋고 소화 흡수율도 높아진다. 그러나 몸에 좋은 마늘이지만 자극이 강해 많이 먹으면 속이 쓰리므로 주의해야 한다. 마늘은 우유, 인삼, 생강, 꿀과 상호 보완 역할을 하며, 달걀을 첨가하면 포화지방을 잡아준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문밖출입이 어려웠지만 이제 날이 풀렸으니 마늘밭은 벗 삼아 다녀도 될 것이다. 금년에도 농사가 잘 되기를 마음으로만 바랄 것이 아니라 정성을 쏟아야 한다. 작물도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 하니 부지런히 잡초도 제거하고 웃거름도 주고 봄비에 물이 고이지 않게 해야 할 때이다. 우리가 쉽게 먹고 있는 마늘의 효능을 다시 한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모진 혹한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생명체에는 분명 특별한 에너지(비밀)가 있다는 것을 믿고 먹으며 건강도 유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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