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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고지리 Feb 23. 2022

정월 대보름의 상처

선생님의 매 타작

대보름이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됐는데 학교가 시끄러웠다. 소재지 아랫마을 아이들이 단체로 선생님에게 매를 맞았다는 소문이 퍼졌다. 평소에도 성질을 잘 내셨던 그 선생님 자제분 두 형제가 대보름날 밤 돌 팔매질에 머리에 부상을 당하여 겨울방학 내내 병원을 다녀야 했으니 오죽이나 화가 나셨을까. 냇가 건너 아이들이 던진 돌에 하필이면 선생님 아들 둘만 상처를 입은 것이다. 오랜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되자 선생님은 작심한 듯 그 동네 아이들에게 매 타작을 하셨다.  


매년 정월 보름날은 달집을 태우며 농악대가 불에 타는 달집을 돌며 한 해의 안녕과 풍년농사를 기원했다. 아이들과 아낙네들은 달집 태운 불에 콩을 구워 먹으면 그해 머리에 부스럼이 나질 않는다 하였다. 또한 액운을 갖고 가라며 날리던 연도 걸어 태웠다. 아이들은 깡통 밑바닥에 작은 구멍들을 내고 철사를 길게 두줄로 손잡이를 매달아 불깡통을 만들었다. 여기에 불쏘시개를 넣고 불을 붙여 돌리면 둥근원이 아름답게 그려지는 불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깡통 속의 불이 다 타고 남은 숱불을 하늘 높이 던지면 작은 불씨들이 별똥처럼 밤하늘을 날아 환호성을 질렀다. 이때쯤이면 논 밭둑의 잡초를 태우는 쥐불놀이도 하였다. 어른들은 잡초를 태워야 농사에 해를 주는 벌레와 들쥐가 죽는다 하였다. 오늘날은 해충도 죽지만 자연에 이익이 되는 익충이 더 많은 피해가 있는 데다 화재 염려도 있어 쥐불놀이는 권장하지 않는다. 


그해 정월 보름날 밤에도 동네 아이들은 달집 태우기를 실컷 즐기다가 냇가로 향했다. 매년 보름날 밤이면 냇가를 사이에 두고 아이들끼리 돌 팔매질하는 전쟁놀이다. 캄캄한 강 건너에 서로 돌을 던지니, 누군가 맞으면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던졌다. 위험한 놀이였으므로 초등학생들보다는 중학교 이상 아이들이나 청년들이 앞장을 섰는데, 그날따라 초등학생이던 선생님 자제 둘이 따라나섰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아마도 남자로서의 담력도 기르고, 만화책에서 보던 전쟁터의 병사라도 된 듯 한 상상을 했을 수도 있다. 돌 던지기를 마치고 돌아온 형들의 표정은 항상 개선장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옛날 젊은 분들은 상대마을과 농사용 물 다툼이나 농토를 관리하다 생긴 감정싸움이었을 수도 있으며, 그보다 더 옛날은 동네 땅을 넓히려는 싸움이 전통놀이로 변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소재지 마을도 위끝, 아래 끝 마을로 구분되어, 학교가 있는 위끝 아이들이 은연중에 아래 끝 아이들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물며 하천을 경계로 두 마을 아이들의 묘한 경쟁심리나, 소재지 아이들의 텃세에 불만이 있을 법도 하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매년 정월 보름날 밤엔 달집 태우기를 마친 후 냇가에서 돌 던지기 전쟁놀이가 계속되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선생님에게 매를 맞아도 지금처럼 항의하거나 부모들이 쫓아오던 시절이 아니었다. 학교 아이들은 선생님의 매질에 어느 누구도 반발하지 못했고 매 자체를 무서워할 뿐이었다. 그날 밤 돌을 던진 아이들은 미안 해했겠지만 캄캄한 밤에 던진 돌에 누가 맞았는지 던진 본인도 모를 일이고, 경찰이 조사한들 어떻게 범인을 잡아낼 수가 있겠는가. 이처럼 위험한 놀이에 참가한 어린아이들이 잘못이었으니, 교육차원에서도 선생님의 매질은 변질된 전통놀이를 막아주셨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일이 있던 다음 해부터는 두 마을 간 돌팔매질 놀이는 없어졌다.  


보름날 아침이면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내 더위 사 가라며 더위를 미리 피해보려는 풍습도 있었다. 오곡밥과 나물도 맛보는 한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대보름날 대표적인 오곡밥은 신라시대 제사상에 올리던 약밥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땅콩, 호두, 부럼을 먹는 날로 겨울을 지내면서 면역력이 저하된 시기에 영양식으로 원기를 보충하려는 조상님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2022년 정월 보름날 달집을 태우며 한해 풍년을 기원하던 행사는 코로나로 대부분 취소됐다. 아쉽게도 전통놀이 행사는 즐길 수 없지만, 누구나 둥근달을 바라보며 올 한 해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어 편안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고, 올해 농사도 풍년이 되기를 바란다. 추위가 서서히 봄기운에 물러가면 농촌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코로나와 추위로 외출이 어려웠던 농부들도 기지개를 켜며 들로 나선다. 논과 밭 들에 냉이는 벌써 움트기 시작했다. 아직은 찬바람이 귀를 스쳐도 지난가을 솟은 노란 마늘 순은 냉기를 머금고 생기를 보이기 시작한다. 정월은 한 해를 시작하니 농사를 설계하고 농한기에 새로운 각오로 풍년을 기원하는 시기이다. 한해를 활기차게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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