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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숭범 Aug 09. 2023

그늘 부자- 애 딸린 시인 김


탯줄이 잘리자 그늘이 자라기 시작했다

비명으로 첫 호흡을 밀어낸 이들은 그늘로 웃지 않는다 

정색하고 나면 항상 연결되고픈 것의 건너편이고 

어둠을 먹어야 찬란해지는 물고기들을 더러 길렀지만

그늘은 사라지지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그늘 아래 심연으로 물고기들만 사라질 일이다

     

내 그늘 안으로 손을 뻗어 심장을 움킨 남자가 있었다

묵힌 적막을 서뿐서뿐 밟으며 소풍을 다녔다

내 안 어딘가 좁은 다락방에 같이 눕곤 했다 

이상했으나 이상적인 시어를 줍고 버리고 했다

엄마가 되기 전 내린 폭설에 여자가 되었다

서로 손차양을 해주면서 시시각각의 그늘이 되었다  

    

이름과 사생활이 없는 엄마들은 생각을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들이 허리를 펴다가 안치된 곳에서 일할 뿐이다

산다는 게 그늘이라고 생활의 더미가 속삭였다

아들 이름을 부르면 모든 게 아궁이 입천장에서 그을렸다

지상에는 집이 없고 어떤 절규만으로 음악이 완성됐다

셋방으로 난 길에 가느다란 그늘이 음악과 살았다   

  

시인이라고 적으면 글자 바깥으로 그늘이 광활해졌다

그늘에서 꽃을 찾는 아들은 천천히 뒤처져 걸었다

꽃을 선물해준 얼굴들은 그늘로 그늘을 가리려 했지만

오래 참아야 이해되는 의성어들이 종종 웅성댈 뿐이다

느리게 자라는 나무를 두고 바람은 숲을 거느리지 못한다  

   

이미 무거워진 이름을 떨구지 못하는 구름이 있다

흐리게 쓴 시에 아들이 들어가면 여기서 더 적막한 그늘


(창작 21, 2023년 3월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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